선배 시민 간담회
선배 시민이란 선배로서 역할을 잘하라고 노인들에게 붙여주는 이름 같습니다. 주창자는 방송통신대학교 행정학과 유준상 교수라네요. 좋은 제안입니다. 선배 시민이라는 이름이 좋아 그런지 선배 지식인으로 활동하라는 그 취지가 좋아 그런지 전국의 노인 복지관들이 그 프로그램을 속속 도입하고 있답니다.
너도 대전 동구 정다운 노인 복지관에서 금년 7월에 도입한 선배 시민교육과정에 등록했습니다. 너는 너의 직업상 독서 토론그룹에 가입하여 4차례 사전 교육을 받고, 3차례 모임에 참여하였습니다. 모임의 이름은 네가 ‘상록수’로 하자고 제안하여 그대로 채택되었지요. 상록수 팀은 1주일에 1회 화요일 13시에 모이는데 회원은 5명이랍니다. 지난주 모임에서는 너의 제안으로 황선미 작가의 『마당을 나온 암탉』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어제 모임에서는 『돌멩이 국』을 읽고 각자 느낌을 이야기했지요.
그런데 한 여자 어르신이 이런 거 해서 뭐 하는지 모르겠다, 동화는 너무 쉬워서 재미가 없다, 차라리 자서전 같은 거나 읽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어르신들의 호응은 별로 없었습니다. 다수 의견은 동화가 재미있다는 것입니다. 그 어르신도 지난주에는 동화가 재미없다는 말을 하지 않았었는데요, 대신 무슨 그림을 추천하며 그 그림에 대해 대화를 나누자고 했었지요. 그 그림은 유명화가 작품인데 작가 이름은 모르고 어떤 노인이 젊은 여자 젖을 먹고 있는 그림이라고 했습니다.
아마 그 어르신이 추천한 그림 이야기는 하지 않고 네가 추천한 동화 이야기만 하니 좀 기분이 상했나 보네요.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당장 그 그림 이야기를 하자고 했습니다. 화가 이름을 몰라 인터넷 검색도 안 되는데, 각자의 상상만으로 의견을 말해보라네요. 하하. 그래서 노인이 젊은 여자의 젖을 먹는 그림을 상상하며 각자가 한마디씩 했습니다. 유명화가의 그림이니 선정적인 건 아닐 것으로 생각하고 젊은 여인이 생명이 위독한 노인을 구하기 위해 헌신하는 장면일 거라고 의견을 모았답니다. 그랬더니 제안한 그 어르신은 그 그림이 아버지와 딸의 관계라 했습니다.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서 효성을 발휘한 것이라고요. 하하. 그다음 그 어르신은 죽음을 준비하는 이야기를 하자고 했습니다. 본인은 유서를 써서 가방에 넣고 다닌다면서요. 갑자기 외출 중에 죽으면 구조대원이 가방을 뒤져 볼 거 아니냐, 그러면 집에서 자식들이 유서가 어디 있는지 찾느라고 애쓸 필요가 없을 거라고, 네,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선배 시민 독서 토론 모임과는 주제가 어울리는 것 같지가 않아 좀 허전했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오면서 너는 선배 시민 모임이라도 너보다 10년 정도 차이나는 어르신들과는 대화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다 세대별 개인별 처해 있는 입장이 달라서 그럴까요. 그래도 너는 다음 주를 위해 동화 2편을 추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락부락 염소 3형제”, 그리고 “커다란 순무”,
그런데 엊그제 수요일 날 도서관 역사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그 그림 이야기를 했더니 마침 그 그림을 알고 있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림을 그린 화가는 루벤스, 그림의 제목은 “시몬과 페로” 그리고 소장처는 암스테르담국립박물관이라 하는군요. 그리고 그림에서 시몬은 아버지, 페로는 딸인데 아버지가 굶어 죽어야 하는 형벌을 받아 감옥에 있는데 마침 출산한 지 얼마 안 된 딸이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날마다 면회를 가서 아버지에게 젖을 먹이는 장면을 그린 거라 하네요. 와, 주제는 ‘효성’이지만 그림 표현은 좀 선정적인 것 같습니다. 하하. 2018.1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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