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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젖소 부인

  겨울에는 털옷이 많이 등장한다. 털옷이란 짐승의 털과 가죽을 사용하여 만든 옷을 말한다. 그리고 옷뿐만 아니라 짐승털목도리도 포함된다. 추운 겨울에 거리에 나가보면 털옷이나 털목도리를 걸친 선남선녀들이 눈에 띄는데, 그분들을 보면 좀 덜 추워 보이기도 하고, 부잣집 마님이나 부잣집 주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털옷으로 감싸고 다니면 덜 추울 것이고, 털옷은 비싸므로 부자가 아니면 사서 입기도 어렵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진짜 털이 아니라 값이 저렴하면서도 따뜻한 인조 털옷들이 많이 나오고 있으니 서민들로서는 매우 다행스럽다. 그렇게 부유하지 않아도 털처럼 생긴 다양한 웃옷을 사놓고 겨울에 따뜻하게 입고 다닐 수 있으니 좋고, 진짜 털옷이 아니면서 진짜의 효과를 좀 낼 수 있으니 진짜 부럽지 않아 좋은 것이다. 또 진짜보다 더욱 다양한 무늬와 색깔의 옷이 많아 변화의 패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요것조것 골라 입을 수 있어 좋을 것 같다.   

  필자는 털옷을 입지 않지만 털옷을 볼 때면 어쩐지 진짜 털로 빚은 옷 보다는 인조털로 만든 옷이 더 좋아 보인다. 실제의 짐승 털을 걸치고 다니는 모양을 보면 그 짐승의 본래의 모습이 생각나고, 그 짐승을 잡아서 가죽을 벗기는 잔인한 사람들이 생각나고, 아직 그 가죽과 털에서 무슨 냄새가 날 것 같아 불쾌해진다. 나아가 털옷을 입은 사람이 바로 그 짐승처럼 보이기도 해 이상야릇한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너구리같은 인간” 또는 “곰 같은 인간”으로 비쳐지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조 털옷은 누가 보아도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은 옷을 잘 해 입지 않는 동물의 털 무늬를 흉내 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젖소나 사슴 등의 무늬를 본떠 ‘무늬’만 털옷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옷을 입을 경우 사람들은 애교 섞인 농담을 건넬 수 있다. 물론 서로 잘 아는 ‘친한’사이인 경우에 한해서. 예를 들어 “보세요, 젖소 부인”, “이봐요, 사슴 총각” 하면 재미도 있으면서, 격조도 있는 것 같아 듣는 이의 기분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만일 실제 짐승 털을 걸치고 다니는 사람을 보고는 아무리 친하더라도 이러한  농담을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보세요, 너구리 아저씨, “이것 봐요, 곰 아줌마”라고 했다가는 상대방의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을 것이다. “아니 나보고 너구리같은 인간이라고?, “아니, 지금 뭐라고 했어, 나보고 곰 같은 인간이라고?”하고 화를 내며 나설 것 같다. 필자의 눈에는 젖소무늬나 사슴무늬 인조 털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은 젖소와 사슴처럼 순하고 착해 보인다. 그러나 진짜 짐승 털을 두르고 다니는 사람은 마치 너구리같고 곰 같아 보이니 이것도 하나의 선입견일까?(2008.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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