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문편지
그 때 네 나이 스물세 살이었다고, 하하. 알퐁스 도데의 <별>에 나오는 목동의 말이 아닙니다. 너는 스물세 살에 대전전신전화국에 입사하여 교환원이 200명이나 근무하는 시외전화 교환실에서 행정서기보로 근무했어요. 그런데 입사 2개월 만에 의무적 국토방위에 소집되었지요. 그래서 할 수 없이 휴직을 하고 군대에 갔어요. 믿으실 지는 잘 모르겠으나 너는 남자답게 현역병으로 입대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부선망단대독자父先亡單代獨子라고 고향에서 방위로 근무하라는 병무청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당시 스카이대 등 일류대 다니는 학생들도 방위로 많이 빠지더라고요. 그 당시는 현역병으로 가지 않고 방위로 빠지는 게 일종의 특혜였나 봐요. 소위, 중위, 대위보다 방위가 더 위라나, 뭐 그러면서.
전화국 근무는 두 달밖에 못했지만 네가 프레시맨이라 그랬는지 교환 아가씨들이 관심을 좀 보이더라고요. 몇 몇 교환원들이 너를 보고 이런 저런 말을 잘 걸어왔지요. 그 중 너는 유난히 서구적으로 코가 크고 예쁘장한, 나이가 비슷한 왕윤희씨에게 관심이 좀 갔지요. 그래서 네가 4주 군사훈련을 마치고 자대(면사무소 출장소)로 배치되어 근무를 시작하며 그 아가씨에게 두루 안부를 묻는 편지를 보냈지요. 그랬더니 일주일 만에 답장이 왔어요. 내용은 다 잊었지만 아마도 건강하게 근무 잘하고 오라는 내용이었겠죠 뭐. 그 편지가 네가 군대에서 받은 유일한 위문편지였어요. 그런데 그 후로는 서로 편지를 주고받은 기억이 없어요. 그 때 너는 가난하여 연애를 걸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 때문, 아니면 방위라서 용기가 없었던 때문일까요? 아마 후자가 더 믿음이 가네요. 그 때 네 나이 스물 셋이었으니까요. 하하. 그때 컴퍼니 커플을 만들지 못하여 약간 아쉬움이 남았나 봐요. 하하. 그 후로 집사람한테는 그런 이야기 입밖에도 안 꺼냈지요. 하하. 프랑스 피에르 상소 교수의 조언을 듣고 42년 전의 옛 추억을 더듬어 보았네요. 역시 추억은 아름답네요. 웃음이 나오는 군요. 하하. 2017. 9. 13(수).
그 편지를 찾았어요. 신기하네요. 동학사 야유회 갔던 사진도 있네요. 하하.
네가 쓴 편지를 그 때 초안을 보고 컴퓨터로 옮겨봅니다.
Miss 왕에게
편지를 써보고 싶은 마음에 펜을 잡습니다. 그러나 어떤 어조로 써야 좋을지는 생각이 잘 나지 않으니 펜의 동작에 맡겨야 되겠습니다.
盛夏를 맞아 계장님 이하 관리계 직원 여러분들 모두 안녕하십니까? 워낙 짧은 기간이라서 이름을 기억할지 테스트를 할 겸 한 번 일일이 꼽아보며 안부를 묻기로 하지요. 빈원시 아저씨, 석기정 선생, 맞은 편 신영자양, 감청대 김영숙, 휴게실 정양자 여사, 송인구 여사, 박용성, 이정환, 권용순, 김인숙, 송명, 김옥년 양(순서 무순) 등 모두 열심히들 근무하고 계신지요? 한옥란씨는 그 때 어른이 된다고 했으니 지금은 대전을 떠났을 테고... 제가 잠간 배우다가 떠나온 직장이 되어서 많은 분들을 기억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교환실 분위기만은 뚜렷이 그려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각설하고 역시 시간은 흘러 저는 제대가 5개월 남았으니 고참이 되었다고 하는 자부심을 가지며 현재의 충실한 근무와 내일의 설계에 좀은 신경을 쓰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방위군도 군인이냐고 할 만큼 사회적인 푸대접을 받긴 하지만 적어도 “위”자 돌림이니 소위, 중위, 대위, 그 위에 방위가 있다고 자위조의 농담을 지껄이며 무더위 속 작은 사무실을 지킨답니다.
모든 고마운 분들께 소식을 드리는 것이 에티켓 이겠으나 일면 무성의 탓도 있고, 일면은 형식주의적인 태도라고 생각되기도 하여 관리계에 들어섰을 때 친절한 가이드가 되어주셨던 Miss 왕에게 편지를 드리오니 골고루 안부를 부탁드립니다. 내내 관리계의 화목과 단결 그리고 건투를 빌며 간단히 난필을 마칩니다. 75. 7. 9 이종권
미스 왕의 답장
to 이종권
붙잡을 수도 떼어놓을 수도 없는 시간이기에 세월은 어느덧 흘렀나 봅니다.
뜻밖에 받아 본 편지 감사히 잘 받았습니다.
그동안 안녕하시겠지요.
우리 관리계 직원을 대신해서 제가 형식적이나마 고맙다는 인사를 올려야 됨을 송구스럽게 생각하며 이 하얀 공백을 메꾸고 있습니다.
한자 한자 읽어내려 가면서 너무나도 자상한 글귀에 자못 놀라움을 인식하며 다시 한 번 기억하게 되고 미처 생각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를 모색하고 참작할 수 있었어요.
처음 써보는 글이기에 어떻게 써야 좋은지 망설여지는군요.
짧은 기간이나마 조금 보탬이라도 될까 해서 나름대로는 부단히 노력했건만 마음에 흡족하질 못했을 거예요.
지난날들을 세지 말고 미래를 향해 살 수 있는 – 욕망을 채워가며 사는 인간형과 세월을 탓하며 사는 인간형은 무의미한 인생이라고 단정하고 싶습니다.
아무쪼록 현실에 만족하며 앞으로의 건투를 빌 뿐입니다.
오늘은 무척 덥군요.
시원한 바다를 연상하며 마음으로나마 위로해 봅시다.
얼마 남지 않은 기간 몸 건강히 군 복무에 충실하시고 밝은 웃음으로 만날 날을 기원하며 이만 줄입니다. 내일을 위해 좋은 꿈 많이 꾸시길...
일구칠오년 칠월 십칠일
관리계 윤희.
어설프면서도 건전하고 철학적이기도 한 이 편지들을 다시 읽으며 이 정도면 1975년 당시의 진솔한 청춘 문학으로서 손색이 없다고 자화자찬하니 오늘 따라 정말 기분이 젊고 좋습니다. 과거 회상도 때로는 이렇게 좋을 수가 없군요. 이게 다 문학적인 상상력 덕분인가 봐요. 하하.
네가 보낸 편지 초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