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민문학과 교훈문학
평민문학, 교훈문학, 문학에 이런 장르가 있을까? 문학을 전공하지 않은 너는 가끔 이런 엉뚱한 단어조합을 해본다. 문학 전공자들도 이런 용어를 쓸까? 당장은 물어볼 데가 없으니 마음이 급해 그냥 너의 생각을 적어본다.
문학에도 평민문학과 귀족문학이 있을 것 같다. 평범한 서민들의 삶을 소재로 한 작품, 민초들의 삶 속에서 그들의 희로애락을 진솔하게 담아내 그들에게 삶의 의미를 더해주는 작품, 뭐 이런 것이 평민문학이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니 네가 접한 작품들은 거의 모두 평민문학인 것 같다. 너는 왕족이나 귀족, 고위 정객들의 이야기는 별로 접하지 못했다. 아니 접한다 해도 거기서는 별 재미를 느끼지 못했을 것 같다. 하기야 그들의 불공정한 이야기는 역사책에서 많이 접해보았다. 그리고 그런 역사이야기를 작품으로 읽는다 해도 그들이 평민을 어떻게 대했는지에 방점을 두고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들은 문학이라기보다는 역시 역사(History)겠지.
시각은 다르지만 교훈문학이라는 말도 조립해본다. 구인환 교수의 오래된 교과서 『문학개론』에서는 문학의 기능을 교시적 기능, 쾌락적 기능, 종합적 기능으로 설명하던데, 그 가운데 교시적 기능을 다른 말로 교훈적 기능이라 해도 될 것 같다. 하지만 작품 속에서 대 놓고 독자를 가르치려 들면 좋은 작품이 아니라는 말도 들었다. 스토리의 전개과정에서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통해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교훈적 의미를 느끼도록 하는 것, 그것이 작가의 능력이라는 것도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다.
요즘 너는 2017년 7월에 개정 출판된 김형석 교수의 수필집 『영원과 사랑의 대화』를 전철에서 읽고 다니며 수필이 일종의 체험적 교훈문학임을 가을처럼 느끼고 있다. 저자가 철학자이기 때문에 글에서 철학 냄새가 물씬 풍기기도 하고, 예전 어른들이 선호한 교육자적 교훈도 군데군데 녹아들어 있다. 철학과 문학이 학문의 갈래가 다르니 표현 기법이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대체로 철학자들의 글은 철학적이라고 해야 할까? 건조체라 해야 할까?
네가 보기에 김형석 교수님의 글은 좀 건조체 같지만 어떨 때는 여성작가처럼 감성적인 표현을 써 너에게 눈물을 찔끔거리게 만든다. 일제치하에서 본인이 어렸을 때 겪었던 찢어지던 가난, 학업에의 동경과 고난, 일본 유학시절에 겪은 사건들...을 진솔하게 풀어내어 독자들에게 착한 삶의 의미를 깨닫도록 도와주고 있다. 어떨 때는 “~~해야 한다”는 직설적 화법으로 훈육하는가 하면, 어떨 때는 스스로 겪은 힘든 생활, 신문배달, 식당알바, 부모님과의 생이별, 해방과 전쟁 등에서 겪은 갖가지 일들을 다큐멘터리로 구성해내고 있다.
소설가는 허구(fiction)를 진실처럼 그려내지만 수필가는 사실을 진실처럼 그려내는 것일까? 아, 오늘 김형석 교수님의 수필 속에서 너는 중요한 한 가지를 발견했다. 교수님의 글들은 곧 교수님의 일기라는 사실이다. 일기를 나중에 써서 날짜와 날씨는 쓰지 못했지만 교수님이 마음속 깊이 새겨 두었던 지난날의 일기를 독자에게 지금 공개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네가 요즘 너의 체험을 일기처럼 쓰고 있는 것도 세월이 가면 읽어볼 독자기 있지 않을까 하고 한줄기 위안을 받는다. 과거의 회상이든 현재의 일기든 착하다고 생각하는 너의 생활과 너의 마음을 마음속에 그리고 컴퓨터에, 종이에 이렇게 써 두면 최소한 너의 후손들 가운데 글을 좋아하는 자손들이 할아버지의 글을 볼 기회가 있을 것이고, 할아버지의 글을 읽고 뭔가 교훈을 얻고 착한 눈물이라도 한줌 흘려준다면 너는 너의 삶이 헛되지만은 않았음을 그때 영혼으로라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하. 그래 어제 영등포 신길동 아들 며느리 집에 가서 이제 생후 한 달된 어여쁜 손주를 안아보고 와서 네가 너무 상기되어 있나보다. 그런데 요즘 이렇게 행복을 느끼기는 정말 난생처음인 걸. 하하. 좋다. 2017. 9. 2(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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