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테이션 1
때는 1979년 3월 12일 너는 한국전력 주식회사에 99기로 입사했다. 하하. 입사 열흘 전에 우편으로 회사 안내책자 한 권을 받았다. 제목은 『우리들의 한국전력』. 책 이름도 참 정다웠다. 요즘은 ‘우리들 병원’도 있지만 예전엔 우리들이라는 표현을 책 제목에서 별로 볼 수 없었던 것 같은데. 어쨌든 너는 입사시험에 합격해서 그랬는지, 기대와 흥분이 섞여 있던 때라 그랬는지 그 안내 책자는 무엇보다 멋있게 보였었다. 그런데 오늘(2017.1.29) 그 책을 꺼내보았다. 하하. 여전히 멋있게 보였다. 이미 2001년에 퇴사를 했는데도 말이지. 금년이 2017년이니 38년이나 지났는데, 마음은 청춘이다. 아직 그 회사에 남아있는 동기들도 제법 있다. 그 때 열아홉 살에 입사한 동기들은 너랑 8살 정도 차이가 났지, 그들 중엔 지금 제법 높은 간부가 되어 있는 동기도 있다. 축하할 일이다. 그들도 얼마 안가 세월을 못 이기고 퇴직을 하겠지만. 하하.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간다. 그 책은 총 9편, 358쪽으로 되어 있다. 제1편 연혁 및 현황, 제2편 인사(노무)관계 제 제도, 제3편 영업, 제4편 발전(수력, 화력), 제5편 원자력 발전, 제6편 송변배급전, 제7편 통신, 제8편 토목, 건축, 제9편 사원의 근무예절. 하하. 책의 장 구분을 제1장, 제2장 이라하지 않고 더 큰 단위인 책 편자를 쓴 것도 의외다. 스케일이 더 크다는 의미일지. 아니면 편집 담당자의 우연한 선택이었는지. 이 책의 머리말은 당시 연수원장의 명의로 되어 있다. 머리말을 그대로 적어보자. 국어 맞춤법은 오늘의 것으로 바꾼다.
이 책을 펴내면서
[시작이 반이다]라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새로운 세계에 대한 원대한 포부와 동시에 미지의 세계에의 불안으로 마음 졸이고 복잡한 심경에 처해 있을 줄 압니다.
부모형제나 학교 선생님의 품에서 벗어나 인생의 거친 파도를 혜치고 나아가는데 어떤 긴장감과 공포심을 갖게 되는 것은 누구나가 당하는 체험이기도 합니다.
사회인으로서 특히 한전인으로서의 새로운 출발점에 서있는 여러분에게 진정한 의미의 공부와 수업은 이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이제 우리 회사에 영광스럽게 입사하게 될 여러분은 곧 연수원에 입교하여 일정기간 교육 후 전공에 따라 각 분야에서 근무하게 됩니다.
이에 따라 회사는 입사 전에 우리 회사의 업무현황을 소개하여 궁금증을 덜어드리고 직장생활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갖게 함으로써 더욱 보람 있고 희망찬 새 출발이 되도록 이 소 책자를 펴냅니다.
아무쪼록 여러분의 가슴 속에 타오르는 희망의 등불을 오래도록 꺼지지 않도록 자기 성장에 정진하여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1979년 1월 20일
사원연수원장 김병철
표현이 어색한 부분은 빨간 색으로 표시해 보았다. 이거 교정하려고 이글을 쓰는 건 아닌데 교정보면서 읽는 습관이 나와 버렸네. 하하. 요즘 들어 정말 피부로 느끼는 것은 능동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진리다. 우리들은 능동적인 민족이었다. 그래서 독립을 이뤘다. 그런데 영어가 들어오면서 수동태 문법을 배우는 바람에 국어도 행동도 수동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제 정신을 차리고 우리의 능동을 찾자. 국어도, 행동도, 일자리도. 2017.1.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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