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째로, 눈을 본다. 눈은 인간 최고의 보배이다. 눈을 뜨면 세상과 만난다. 광명의 빛을 본다. 하늘을 보고 땅을 본다. 부모를 보고 형제자매를 본다. 스승을 보고 제자를 본다. 애인을 보고 아가를 본다. 글을 보고 읽고 쓰고, 인류문명을 창조한다. 너무 작아서 볼 수 없는 것은 미세현미경으로 보고, 멀리 있어 볼 수 없는 것은 망원경으로 본다. 눈이 없으면 문명을 보기가 어렵다.
둘째는 귀를 본다. 사방에서 일어나는 좋은 소리, 나쁜 소리, 위험한 소리를 감지할 수 있다. 칭찬을 하는지 욕을 하는지, 폭발이 나는지, 총소리가 나는지를 금방 알 수 있다. 강의를 듣고, 음악을 듣고, 라디오를 듣고, 종소리를 듣고, 부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귀가 없으면 문명을 듣기 어렵다.
셋째, 코를 본다. 코는 얼굴의 가운데 있는 ‘중봉(中峰)’이다. 그래서 코는 인물의 포인트이다. 코가 잘생기면 대체로 인물이 좋은 것이다. 원숭이의 코와 사람의 코를 비교하면 잘생긴 편이 누군지를 잘 알 수 있다. 코는 이렇게 미관을 결정하지만 감각 면에서 냄새를 판단하는 주요 기능이 있다. 향기로운 냄새, 구수한 밥 냄새, 청국장 냄새, 그리고 가스냄새, 똥냄새에 이르기까지 코가 제 기능을 함으로 해서 인간다운 체취를 풍기고 산다.
넷째, 혀를 본다. 혀는 입안에 있지만 입안에서 핵심 기능을 한다. 입안에는 이빨도 있어 음식물을 분쇄하거나 발음을 새지 않게 한다. 그러나 혀는 ‘맛 기능’과 ‘말 기능’의 두 가지 기능을 더욱 완벽하게 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음식물을 받아들여 맛을 검토하여 씹어 넘길 것인가 말 것인가를 판별한다. 음식을 먹은 후에는 이빨의 구석구석을 훑어 청소까지 해준다. 혀가 있어 말의 발음도 완벽히 할 수 있다. 우리말 발음을 할 때는 혀를 펴고 영어를 할 때는 혀를 굴린다. 그래서 혀는 잘만 쓰면 말을 ‘멋있고’ ‘맛있게’할 수 있다.
다섯째는 신(身)인데 이는 촉각을 의미한다. 우리 몸의 피부에는 다 감각이 있다. 춥고, 덥고, 시원하고, 선선하고, 딱딱하고, 물렁하고, 껄끄럽고, 보드랍고. 이러한 감각은 대개 피부접촉을 통해 판단한다. 손, 발, 팔, 다리, 머리, 목 가슴, 배, 어디 하나 감각이 없는 곳이 없다. 사랑의 감정도, 2세의 탄생도 촉각을 통해서 촉진, 성취된다. 촉각이 없으면 오체가 마비되어 삶을 살아갈 수 없다.
이렇게 보니 우리의 오감이 얼마나 우리를 건강하고 즐겁게 살 수 있게 하는지를 다시 한 번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어느 것 하나라도 고장이 나면 장애가 와서 인간다운 삶을 살기 어렵다.
이제 아까 검토를 보류한 또 하나의 측면 즉 오감은 욕심의 근원이라는 불가의 깨달음을 살펴볼 차례다.
첫째는 눈이다. 눈으로는 자연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만 보려 한다. 아기가 처음 태어났을 때는 맑은 눈으로 뭐든 신기하게 보고 방긋거리지만, 성장하고 어른이 되면 좋은 것, 아름다운 것, 값나가는 것을 보기를 좋아하며, 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자기 것으로 만들려한다. 꽃을 꺾어 집으로 가져오고, 집안에 화분을 들여 놓고, 값나가는 미술작품을 사고, 아름다운 여인을 탐하고... 눈과 마음이 합작하여 욕심을 만들어내다가 오히려 혜안(慧眼)을 잃는다.
둘째는 귀다. 귀는 온갖 소리를 다 듣지만 좋은 소리만 들으려 하다가는 귀가 막힐 수 있다. ‘바른말이 귀에 거슬릴’ 수 있는 것이다. 부모님의 말씀을 ‘마이동풍(馬耳東風)’하기 쉽고, 스승님의 가르침도 한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기 쉽다. 아내의 말을 잘 듣지 않으면 가정이 분리되기도 한다. 젊은이들이 음악을 듣고 개그를 듣는 것은 나쁘지 않겠으나 너무 그런 것만 듣다보면 지식과 지혜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귀에도 좋은 마음을 갖다 붙여야 진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자연의 소리, 철학자의 소리, 베토벤의 소리를.(베토벤이 나중에 귀가 먼 것은 음악을 너무 들어서라기보다는 다른 의학적 요인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지혜를 들을 수 있었던 악성(樂聖)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코다. 코는 인물을 결정하므로 코가 마음에 안 들면 메스를 가해서라도 고쳐보려 한다. 콧날을 세우다가 ‘선풍기 여인’이 되기도 한다. 또한 코로는 좋은 냄새만 맡으려한다. 냄새가 좋지 않은 것은 무엇이든 배척당한다. 물론 이것이 나쁜 욕심이라고 볼 수는 없다. 기왕이면 똥냄새보다는 향기로운 냄새가 좋다. 부처님께도 향공양을 하지 않는가? 문제는 좋은 냄새만을 좋아하다가는 청소부도 없고, 똥 치우는 사람도 없고, 분뇨(糞尿) 과학자도 없어진다. 좋은 냄새만 맡으려하면 나쁜 냄새를 퇴치하는 봉사와 연구를 못하게 된다.
넷째는 혀다. 혀는 다목적 기능이 있다는 것을 위에서 언급하였다. 이러한 다목적기능을 잘 쓰면 보배라는 점도 이야기 했다. 그러나 혀의 기능을 잘 못쓰면 낭패를 보기 쉽다. 맛에는 쓴 맛도 있기에, 쓴 음식은 혀가 배척한다. “약은 입에 쓰고, 바른 말은 귀에 거슬린다‘는 옛말이 있듯이 약은 써도 먹어야 한다. 요즘은 약도 달게 만들지만... 또한 한 치의 혀로 내 뱉는 말이 상대방에 상처를 주기도 한다. 혀가 본인의 욕심을 위해 나쁜 말을 할 때 바로 구업(口業)을 짓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身)이다. 신은 촉각으로 대표되지만 어찌 보면 종합적이다. 인간 오체를 가지고 활동하고 다니면서 가는 곳마다 좋은 일을 하고 다니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어 문제다. 너무 말초 신경적 쾌락을 찾다가 예술이라는 미명하에 ‘관능의 문학’을 만드는 사람도 있다. 포르노물이 온라인에 유행하기도 한다. 물론 인간인 이상 자연에서 받은 기본적 욕구를 단절할 수 없고, 단절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지나치면 자연의 도를 넘어 인간성을 상실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오감의 양면성을 분석하느라 글이 좀 길어졌다. 오감(五感)은 저마다 좋은 점 그렇지 않은 점을 다 가지고 있기에 이를 잘 경영하는 것은 개체 인간 스스로의 문제로 귀속된다. 오감의 경영을 잘하는 인간은 수도(修道)가 잘 되어 있는 사람이다. 오감의 보배로운 측면만 살리고 유해한 측면은 잘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감각을 감각으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을 중심 잡아주는 지혜로운 마음을 동시에 활발하게 작동시키는 것이다. 눈은 ‘혜안(慧眼)’, 귀는 ‘혜이(慧耳)’, 코는 ‘혜비(慧鼻)’, 혀는 ‘혜설(慧舌)’, 몸은 ‘혜신(慧身)’으로 변환시켜 조정할 수 있는 인간 경영의 달인인 것이다.(2008.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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