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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불상을 생각하다

불상을 두고 ‘우상’이라고 하는 소리를 많이 들어왔다. ‘우상 숭배’, ‘왜 돌한테 절하나’ 등. 불자가 아닌 사람들 가운데는 절에서 혹은 마애삼존불 앞에서 절하는 불자들을 보고 의아해 한다. 필자도 청소년 시절에는 그러한 생각에 동의하고 있었다. ‘하늘 천 따지’식의 옛날식 교육에서 벗어나 현대적 공부를 한다고 생각하고, 현대 학문이 가장 합리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고, 서양의 학문이 세계를 지배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마 당시 학생 누구나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는 구한말과 개화기에 서양의 종교가 전파되고, 물질적 사회적 생활양식이 급속하게 서구화하는 과정 속에서 변용된 우리사회의 모습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지천명의 나이를 지나 그간의 경험을 반추해보니 종교들 간에도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 공통점의 하나는 모든 종교가 ‘상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다른 종교들도 불교처럼 많지는 않으나 다 상징을 정해놓고 있었다. 기독교에는 예수상과 십자가, 천주교에서는 성모마리아상, 원불교에서는 원 하나. 다 싱징인 것 같다. 신도들이 그냥 허공에 대고 예배하기보다 상징을 정해두고 하면 예배의 집중력이 높아진다고 보기 때문인 것 같다.

불교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불교는 석가모니부처님 뿐 아니라 깨달은 불보살들이 많이 계시고, 이들 모두 숭배의 대상이므로 불단은 많은 불보살 상이 모셔져 있는 것이다. 석가모니부처님 상을 위시하여 관세음보살상, 지장보살상, 문수보살상, 아미타불상, 약사여래불상 등 각각 그 ‘전문성’에 따라 특색이 있는 불보살을 모셔놓고 염불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어느 종교든 상징으로서의 존재는 다 있으며, 이러한 상징은 신도들이 마음을 집중하는 ‘미디어’로서의 역할을 하는 점에서 공통된다. 가장 비근한 예를 하나 더 들면 돌아가신 어른의 상례나 제사를 지낼 때 영정사진을 모시는 것과 하나도 다를 게 없는 것이다. 그러니 누가 누구를 우상숭배 한다고 말할 성질이 아닌 것 같다.

우리나라는 AD 372년 고구려에 불교가 전래 된 이후 불상과 불탑, 불경 등 수많은 불사를 일으켜 불교문화를 꽃피워왔다. 불교문화는 한국문화 그 자체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조의 숭유억불정책으로 위축된 적은 있으나 수많은 고승대덕들이 우리의 정신을 지도하여왔다. 불교는 우리문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가장 유서 깊은 종교인 것이다.   

우리는 우리 문화유산 앞에 겸손해야 한다. 우리문화를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불교의 정신은 자비정신이다. 불교의 교리는 인간적이며 과학적이다. 인간 뿐 아니라 저 머나먼 영겁의 과거세와 미래세, 그리고 저 아득한 우주공간을 모두 통찰하여 이를 바탕으로 한 점 가냘픈 이 ‘소우주’들에게 대 열반의 지혜를 깨닫게 해 준다. 불상은 그러한 불교 커리큘럼 속에서 하나의 빛나는 상징이자 매체라고 생각된다.(2008.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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