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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불교와 기독교의 '융합'

 필자는 이런 저런 기회로 절에도 가보고, 교회도 가보고, 성당에도 가 보았다. 그런데 줏대가 없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나름대로는 다 좋은 것 같았다. 절은 그윽한 풍경소리와 진지한  염불이 좋고, 교회는 마음을 비운 것같이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성스럽게 울려 퍼지는 찬송가가 좋고, 성당은 어머니의 품 같은 안온한 느낌이 좋았다.

이렇게 모든 종교를 ‘좋다’고만 하면 그것은 필자의 피상적인 느낌에 의거한 것이라고 평가하실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평가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종교란 어느 종교든 인류에게 가장 ‘으뜸(宗)’이 되는 ‘가르침(敎)’을 주기 때문에 일단은 모두 가치 있고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종교를 좋다고 한다고 그것이 피상적 느낌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가를 한다면 그 평가 자체가 ‘피상적’일 수 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말이 어렵게 시작되었지만 요는 ‘종교치고 나쁜 종교는 없다’는 것이다. 종교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는 것(토템과 샤만)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지역적으로 문명발상이 다른 인류는 각기 자기들의 본질과 근원을 나름대로 달리 생각하게 되어, 의지하고 숭배하는 대상과 방법도 다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바로 그러한 차이가 오늘날까지 종교 차이가 지속되고 있는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문제는 종교의 차이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종교인들의 행동에 있다. 종교인들이 해당 종교의 근본 교리대로 행동한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근본교리를 실천하지 않으면서 다른 종교인을 깔보고 배척하는 태도가 문제인 것이다.

필자는 성장환경이 불교적이었고, 또 지금 절에 다니고 있으므로 다시 절로 돌아와 불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  불교인이건 기독인이건 모든 편견을 떨쳐버리고 정말 순수한 마음에서 출발하면 단언하건대 인간은 모두 다 똑 같은 것이다. 이러한 똑 같은 인간이 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반목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얼마 전 일요법회에서 종교 자유에 대한 전문가의 열강이 있었다. ‘종교의 자유’는 민주국가에서 당연히 보장되어야 하고 그러한 측면에서 불교인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종교의 자유를 쟁취하자는 요지였다. 

그러나 기독교 재단 학교에 입학한 학생이 불교를 고집하고, 불교재단 학교에 입학한 학생이 기독교를 고집하는 것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라고 본다. 평준화정책상 학교선택의 여지가 없다 하라도 일단은 학교의 방침대로 그 종교를 좀 알고, 졸업 후에는 본인의  종교로 가면 되는 것 아닌가. 오히려 학교에서 타종교의 체험 기회를 통해서 사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계기기 될 수 있는 것이다. 바이블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최고의 책으로 인정되어 왔다. 성경을 접해 읽어볼 수 있다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지혜의 폭이 넓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 또한 같다.
 
불교는 전쟁이 없는 종교임을 강조해 왔다. 따라서 불교는 다른 종교와 대립각을 세울 필요가 없다. 타 종교를 인정하면서 불교를 가꾸고 화합하는 것이 불교의 근본정신이다. 화상(和尙)이 왜 화상인가. 화합하는 스님이 화상이다. 요즘은 아이들이 말을 잘 안 들을 때 엄마들이 “야 이 화상아” 하고  애교섞인 질책의 호칭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화상’은 화합하는 스승님인 것이다(예; 대구화상). 아이들이 정말 '화상'이면 얼마나 좋겠는가? 불교는 기독교든 이슬람교든 다 포용하고 화합하여 큰 포용의 종교를 이루어야 한다. 그래야만 다른 종교보다 더 크고 평화로운 불교 본연의 ‘화합의 종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모든 종교인이 자기 종교의 근본 교리에 입각하여 진실된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불교인과 기독교인이 의기투합하여 일요일에는 전부 교회에 가서 예수의 사랑을 배우고 초하루 보름에는 절에 와서 석가모니의 자비를 얻는 그런 종교화합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아멘!” “오마니 반메흠!”이 함께 융합하는 날 ‘세계일화’는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똘아이'같은 발상이라고 치부하실지 모르겠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는 힘은 '똘아이' 같은 아이디어에서도 나올 수 있다는 미련을 떨쳐버릴 수 없다.(2008.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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