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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길상사

길상사

너는 오늘 또 서울에서 돌아다녔다. 내일이 한글날이라 훈민정음 해례본을 보존하고 있는 성북구 간송미술관 일대에서 제1회 훈민정음 축제를 한다기에 길을 나섰다. 그런데 네가 먼저 방문한 곳은 법정스님과 인연이 깊은 길상사였다. 그 절이 바로 그 인근에 있었기 때문이다. 가람은 삼각산 자락 한 켠 숲 속에 아늑하게 자리 잡아 청정한 바람과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맑고 향기롭게’라는 이 절 운영재단의 이름이 환경과 너무나 잘 어울린다. 이렇게 맑고 향기로우니 이곳을 찾는 사부대중(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의 마음도 맑고 향기롭게 정화될 것이다.

이 절은 이 위치에서 대원각이라는 고급식당을 경영하던 부유한 여인이 늘그막에 법정스님께 시주하므로 법정스님이 설립한 절이라한다. 법정스님은 그 공덕주의 법명을 ‘길상화’라 지어 보답하고, 이 가람의 이름도 ‘길상사’라 하여 중생을 좋은 구도의 길로 안내하는 청정도량으로 삼았다고 한다. 길상(吉祥)이라, 어디서 많이 들어본 불교 용어다. 길할 길, 상서로울 상, 좋은 일이 일어나는 곳, 좋은 일이 일어나도록 공덕을 세운 꽃(華) 같은 보살, 이런 뜻인가 보다. 그렇지, 너희 삶에 언제나 좋은 일이 일어나도록 해야지. 살아생전 법정스님이 남긴 주옥같은 글들 속에 은하수처럼 흩어져 있는 무소유의 향기가 가람 곳곳에 서려 있는 것만 같다.

너는 가람의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속으로 감탄을 연발했다. 야, 참 좋다, 정말 좋아, 여기서 수도하며 살면 참 좋겠다. 네가 스님 될 팔자라고 예전에 누가 그랬었는데, 저기 스님들이 거처하는 원룸에 좀 살면 안 될까? 책이고 뭐고 잡동사니는 다 버리고 참선 수도하며 살고 싶다, 하하. 그러다가 또 아니야, 아니야, 아직은 너에게 후학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어, 너 하나만을 위해 숲으로 들어가는 건 책임회피야, 이기적인 생각이라고. 속세에서 남은 할 일을 다 하는 게 너의 의무야, 이런 생각도 든다. 그래 이 숲 속이 좋긴 하지만 네가 진작부터 스님으로 봉사하지 않았으니 이제 와서 늦게 스님이 되는 것은 도리어 민폐를 끼치는 일일거야, 하하. 너는 그래도 아직 속세가 좋은가보다. 안내판에 도서관이 있는 방향으로 가서 회색 바지를 입은 보살에게 물어보니 지장전 2층이라면서 지금은 공사 중이라 했다. 어서 좋은 도서관으로 거듭나길 간절히 기원해본다. 2016. 10. 8(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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