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학 특강 수강
너는 오늘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금요시민강좌에 출석하여 풍수지리에 관한 강의를 들었다. 강의 바로 직전에 서울대 K선생님에게서 점심을 얻어먹었다. 오늘은 네가 그분께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사려고 했는데, K선생님이 밖에 나가서 삼계탕을 먹자고 하는 바람에 부득이 너는 밥값을 양보하고 말았다. 다음번엔 꼭 네가 사야 마음이 편할 것이다. 식사 후 사무실로 가 커피까지 얻어먹었다. 복날 못 먹은 보양식 삼계탕을 오늘 잔뜩 보충했으니 장기적으로는 너의 영양에 균형을 맞춘 셈이다. 이렇게 너를 배려해주는 분들이 있어 너는 오늘도 행복하다.
오후 2시, 강의가 시작되었다. 먼저 사회자가 강사를 소개했다. 진주 경상대학 최원석 교수, 서울대 지리학과를 나와 서울대대학원에서 최창조 교수의 지도로 풍수지리학을 전공했고,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소개했다. 대학에서는 학술이 아니면 잘 가르치지 않는 법인데 풍수지리학도 학술적으로 연구할 가치가 있다는 걸 너는 오늘 처음 알았다. 최창조 교수는 지리학을 좋아하는 네가 20여 년 전에도 여러 번 들었던 유명한 지리학교수다. 그리고 오늘의 강사는 그 분의 직계 제자라 한다. 기대가 된다.
약 2시간 동안 강의를 들었다. 최 교수는 경상도 말로 억양의 강약을 조절해 가며 차분하고 능숙하게 강의를 진행했다. 강의의 요지는 우리가 살아가는 주거의 입지, 즉 예전부터 내려오는 소위 명당에 관한 것이었다. 최 교수는 우선 3가지 명당이 있다고 했다. 첫째는 자연 명당, 즉 우리가 살 집의 입지를 정할 때 자연적 조건에 적합한 곳을 선택하는데 이를 예전에는 복거술(卜居術)이라 했다고 소개했다. 둘째는 비보(裨補)명당, 즉 비보는 보완이라는 뜻인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지형의 결점을 보완해가면 되는 그런 입지라는 것이다. 세 번째는 그야말로 추상적인 마음의 명당이라 했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 달렸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즉 불교사상과 같은 것이었다.
다 맞는 말 같았다. 그런데 이 정도는 상식이지 뭐 그리 심오한 학술적인 의미는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우리 일반인들의 관심은 아직 민속적 풍수지리에 경도되어 있는데 이런 걸 좀 학술적으로 명쾌하게 풀어서 설명을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았다. 시민강좌라 그런 것일까? 앞으로는 시민강좌라도 좀 더 학술적이고 논리적인 강좌를 듣고 싶다. 시민강좌는 학자들보다는 실버들이 소일하러 오는 프로그램이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진정 풍수지리학의 학문적 계보와 연구역사, 연구방법론 등 우리의 생활 속에서 주거입지 선정 및 건축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좀 더 소상하게 설명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단순 시간 때우기 식 강좌는 이제 시민들도 좀 식상해 한다. 네가 너무 기대가 커서 그럴까? 2016. 9. 23(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