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6. 20(월)
더불 여(與)
오늘 아침 학교에 가기 전 불현 듯 절묘한 말씀의 조화가 머릿속을 스쳐갔다. ‘더불어’에 관한 것이다. 순 우리말 ‘더불어’는 ‘함께’ 라는 뜻과 같다. 여러분과 더불어, 하면 여러분과 함께, 라는 뜻이다. 그래서 정당도 여당은 국민과 더불어 국민의 뜻과 함께 하는 정당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뜻 밖에도 현재 야당의 당 이름에 ‘더불어’ 들어가니 글자 뜻대로 하면 야당이 여당이 된 셈이다. 그래서 필자는 속으로 누가 지었는지 모르지만 당 이름 참 잘 지었네, 하고 생각했다. 지금은 야당이지만 곧 여당이 될 것이라는 암시가 들어 있는 것도 같다. 더구나 지난 총선에서 국민들은 여소야대를 선택했으니 그 이름이 위력을 발휘한 것은 아닐까?
이름은 그렇다 치고, 사실 정치란 여당이든 야당이든 국민과 더불어 가야 맞다. 그런데 국민들도 정치색은 좀 갈라져 있으니 이 갈라진 의견을 바르게 통합하는 일은 여당의 책임이 크다. 그 통합의 힘은 바로 포용력이 아닌가 생각한다. 정권을 잡고 있는 쪽에서 포용력을 가지고 국민의 통합을 위해 솔선수범을 보이면 야도 여를 지원할 가능성이 크지 않겠는가? 물론 각론으로 가면 첨예한 이해관계나 대립이 있을 수 있지만, 설득과 포용을 크게 하면 야도 그렇게 옹졸한 사람들이 아니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국민 국민하면서 정책을 발목 잡고, 심지어 야비한 언사를 똑똑한 척 늘어놓는 것은 더불어 가야하는 야의 태도가 못된다.
양비론처럼 되어버렸지만 여든, 야든 정치의 기준은 국민의 눈높이와 국민 정서에 맞는 정당성, 국가의 안전과 국민경제의 안정, 그리고 세계평화와 인류의 번영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막연하지만 큰 기준을 가지고 문제를 풀어가려 할 때 여든, 야든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신공항 건설에서의 PIMFY(please in my front yard) 문제도 대승적 견지에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설득을 통해 해결해가는 정치 프로세스를 보여준다면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국민통합은 여당 내부에서, 야당 내부에서, 입법, 행정, 사법부 내부에서부터 솔선수범의 노력을 경주해야 가능할 것이다. 우리 민초들은 ‘정자정야(政者正也)’를 알고 있다. 우리 선남선녀들은 이름값이라도 제대로 하는 정치 행정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런데 왜 내가 이런 글을 썼지? 그런데 더불어 뜻의 영어 With에도 더불 유가 있데. 그런데 그더불은 그 더불이 아니라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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