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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단풍

단풍(丹楓)



단풍의 계절이다. 우리나라같이 사계절이 뚜렷한 지역은 정말 심심하지 않다. 문밖에만 나가면 언제나 아름답게 변화하는 자연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계절 변화의 대표지수는 나무다. 봄에는 새싹의 연초록, 여름엔 짙푸른 녹음(綠陰), 가을엔 찬란한 단풍(丹楓)이 된다. 늘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계절 따라 예쁜 옷을 갈아입는 나무들, 이상하게도 겨울엔 옷을 벗지만 대신 하얀 눈으로 가지마다 눈썹을 붙인다.

나무들은 자연스레 바람을 탄다. 바람을 호흡하며 저마다 아름다운 향기를 낸다. 봄에는 봄바람 꽃향기, 여름엔 신록의 향기. 가을엔 열매의 향기. 나무는 바람을 잘 활용할 줄 안다. 바람을 받아들이되 고도의 조정력을 발휘하여 아름답게 승화시킨다. 봄바람을 받아 꽃과 잎을 피우고, 여름바람을 받아 건강하게 자라고, 가을바람으로 잎을 아름답게 물들여 대지에 수채화를 그린다.

나는 사전에서 ‘단풍’이라는 단어를 찾아보고 새삼 단풍의 철학을 발견한 것 같은 희열을 느꼈다. 사전에 보니 단풍의 漢字는 丹楓이다. 붉을 丹, 단풍 楓이다. 풍(楓)자 만으로도 단풍이라는 의미지만 붉을 단자를 덧붙여 ‘붉은 색의 나뭇잎’이라는 것을 확실히 나타내고 있다. 그럼 노란색으로 물든 은행잎은 단풍이라고 할 수 없는가? 아마도 ‘황풍(黃楓)이라는 어휘가 없는 것을 보면 가을에 물든 잎들은 붉은 색이 아니라도 통상 단풍이라고 쓴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그리고 단풍(丹楓)이라는 어휘에 들어있는 ‘풍’자의 의미가 내 생각의 걸음을 또 한번 멈추게 한다. “나무(木)에 바람(風)이 든 것이 단풍(楓)이라. 그렇다면 우리 인생에 바람이 들면 어떻게 될까?”

우리네 인생도 나무처럼 바람을 탄다. 그러나 인간은 바람에 대한 조정력이 매우 약하다. 사람이 봄바람이 들면 눈에 콩깍지가 씌어 배우자의 선택을 바로 하지 못한다. 낭만이라며 연애를 즐기다가 인생을 허비하기 쉽다. 사람이 여름의 모진 비바람을 만나면 인생길을 헤쳐 나가기가 쉽지 않다. 불굴의 의지와 조정력을 발휘해야한 좋은 인생길을 갈 수 있다. 사람이 가을바람을 만나면 외롭고 쓸쓸해져서 삶이 애달프고 서글퍼진다.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이 사람에게서 바람을 맞는 것이다. 사랑하던 사람으로부터 바람을 맞으면 거의 죽을 지경이 된다. 건강이상(健康異常)으로 신체에 바람을 맞으면 무서운 중풍(中風)이 된다.

나무들은 바람을 잘 활용하여 건강하고 오래 산다. 사계절 온갖 자태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사람은 바람을 잘 활용하지 못해 늘 괴로움을 겪으며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허둥댄다. 그래서 사람은 나무를 보고 나무가 바람을 어떻게 맞이하고 어떻게 승화하는 가를 보고 나무의 철학을 배워야 한다. 움직이지 못하면서도 인간보다 더 유연하고 인자한 나무, 곧 떨어질 잎일지라도 아름다운 색깔로 물들이는 나무, 오늘 창밖의 단풍을 바라보며 나도 저 나무들처럼 온갖 바람 잘 승화하여 아름답게 살아야 하겠다는 바람을 갖는다. 좀 늦긴 하지만.(2008.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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