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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대청호반에서

대청호반에서

아침에 밴드에서 축하한다는 신호가 계속 울렸습니다. 네가 생일이라는 겁니다. 생일을 망각하고 있던 너는 달력을 찾아보고서야 오늘이 음력 5월 8일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한 달 전쯤 서울 사는 아들 며느리가 6월 28일 일요일에 고속열차로 대전에 오겠다고 귀띔했었는데, 그땐 무심코 그래그래, 하고 좋아했었는데, 시아버지의 생일을 챙겨주러 오겠다는 며느리의 깊은 뜻을 오늘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오전 11시 40분경 아들 며느리 손주가 왔습니다. 좀 쉬고 있으니 누나의 아들 조카 가족들도 왔습니다. 우리는 가족 단위로 차를 몰고 조카의 안내에 따라 대청호 인근 장수 백숙집으로 갔습니다. 너는 인삼 누룽지 백숙으로 보신하며 백세주도 3잔 카! 백숙에, 백세주에 꼭 백 세까지 살라는 의미가 중첩하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한껏 좋아지는데, 그 집 정원의 꽃들까지 너에게 아름다운 꽃다발을 바치는 것 같았습니다. 하하. 상상 과잉?

점심 후 대청호반 카페로 갑니다. 우린 호반의 벤치에서 푸른 대청호를 바라보며 맛있는 살얼음 커피를 음미합니다. 자주 만나지 않아 따로 노는 손녀, 손주 모습에 마냥 미소를 띠며 평소 뜸했던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어봅니다. 뜨겁고도 밝은 태양, 그 아래 파라솔, 그 아래 소쿠리 의자가 정겨운데, 우리들의 대화도 정겹습니다. 전에 누이가 써서 장원한 ‘대청호의 풍경’(『아버지의 뜰』 204쪽)이라는 글이 생각납니다.

“어디로부터 흘러왔는가? 잠시 긴 여정을 풀고 잔잔한 평화를 이루는 물결! 하늘엔 흰 구름 두둥실 떠 흐르고, 첩첩 옥산은 만산홍 타는 자락을 적시는데, 갈대꽃 무리 지어 흐드러졌고 들국화 송이마다 향기 뿜는, 창망한 대청호의 정경! 참으로 아름다워라. 물가에 서니 바쁜 일상의 굴레를 저만치 물려놓고 오늘 하루만이라도 이 숭고한 자연의 맛에 마음껏 취하고 싶어진다. 살아가면서 묻어왔던 그 어쩔 수 없는 삶의 때를 씻어내고 본연의 순수함으로 돌아간다면 물 위를 날아가는 한 마리 새처럼 가벼운 마음이 될 수 있으리라.”

가을에 쓰신 글 같습니다. 네가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그 절절한 글귀들이 가슴 깊이 스며듭니다. 자연을 보고 감탄하며 순수한 인생을 살고자 한 누이의 마음, 그 마음이 후손에 전이되어 평화의 새 가족이 번창하고 있습니다. 살아계신 매형과 그 자녀들도 순수 그 자체거든요. 오늘 매형 누나의 가족과 너의 가족이 함께 보낸 생일은 정말 축복이었습니다. 이제 7월이 오면 다시 2020년의 하반기 르네상스를 시작해야겠습니다. 2020.6.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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