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2008.3. 7) 서울 지하철 3호선을 탔다. 항상 출발역에서 타니 자리가 넉넉하다. 출발역에서는 사람이 별로 안 타 차안은 조용했다. 그러나 몇 정거장 지나니 점점 승객이 늘어 여기저기서 이야기소리가 들려왔다. 귀 기울여 듣지(listening) 않아도 저절로 듣기(hearing)가 시작된 것이다. 그냥 들려오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가끔은 재미있고, 유익하기도 하다. 그들의 ‘사람 사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날 나에게 들려온 ‘히어링’은 두 언어사용 가족(bilingual family)의 영어와 한국어로 번갈아 하는 대화였다. 흔치 않은 상황이라 그들의 말에 귀가 쏠렸다. 듣기(hearing)가 아니라 경청(listening)으로 바뀐 것이다. 그들은 영어로, 그것도 거의 본토발음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더니 우리말로도 이야기를 반복하였다. 들어보니 영어로 한 대화와 한국어로 한 대화의 내용이 거의 똑 같았다. 결혼식의 손님접대에 관한 것이었다. 부산, 경상도사람은 누가 맡고, 강원도 사람은 누가 맡고 뭐 그런 내용이었다. 자녀가 결혼을 앞두고 온 가족이 귀국하여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인가보다.
그들은 한국인임에 틀림없었다. 한국말이 유창하고 충청도 경상도 말도 알아들으며 다른 연로하신 승객들에게 말을 걸고 자리도 양보하는 멋진 모습을 보였다. 미국에 오랫동안 거주한 재미 교포인 것 같기도 한데, 부모와 아들 딸, 할머니까지 영어와 한국어가 유창하고 자연스러우니 ‘글로벌 가족’이란 바로 저와 같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와 부모가 영어가 유창하면 자녀들은 한국어가 서툴 것이고, 자녀들이 한국어에 유창하면 할머니와 부모는 영어가 서툴 것 같은데, 그들은 두 가지 언어에 다 자연스러우니 언어능력을 타고난 사람들인가 보다.
그들의 대화는 30분 이상 지속되었다. 영어로 또 우리말로. 대화가 길어지니 좀 의문이 들고, 서서히 거부감이 오고 있었다. 한국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끼리, 한국 사람들이 듣고 보는 공공의 전철 안에서 꼭 그렇게 영어로 말하고, 또 한국어로 되풀이(revival) 해야 하는지. 가족끼리만 있는 그들의 집에서는 어떻게 하든 상관할 바가 아니지만 한국의 공공장소에서 영어와 한국어를 번갈아, 그것도 보란 듯이 영어에 비중을 두고 대화하는 모습은 어쩐지 거부감이 들었다.
영어가 세계 공용어가 되어 영어를 배우는 것이 필수가 되었지만, 우리는 한국인으로서 한글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가꾸고 지켜야 할 의무와 책임이 더 크다. 세계 공용어로서의 영어 교육을 강조한 나머지 우리 국어가 밀려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화니, ‘그로벌 스탠다드’니 다 좋지만 우리는 어디까지나 한국인으로서의 세계인이어야 하고, 따라서 국어의 바탕위에서 다른 언어를 활용하는 정신적 자세를 지켜야 한다. 그 두 언어 가족도 앞으로 한국의 공공장소에서는 아름답고 정겨운 우리말을 전용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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