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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학생부군

학생부군

어제(2019.12.24.) 오후 3시 30분 동구 노인복지관에서 노인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2019 시니어 리더십 교육 수료식”, 시니어 리더십이라, 말은 거창하지만, 실속은 별로 없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하지만 수료증과 기념품을 주니 노인들은 즐거워합니다. 사람은 늙어도 물질을 탐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스로 물질이니까요. 너도 예외가 아닙니다. 너에게는 수료증 한 장, 표창장 한 장이 돌아왔습니다. 수료증은 다도 예절 교육, 그리고 전통놀이 교육, 표창장은 이 두 과정을 훌륭하게 수행했기에 준다고 했습니다. 대상이 노인들이라 특별히 ‘훌륭하게’라고 치켜세워주니 기분은 좋습니다. 부상으로 물컵 하나, 핸드크림 3개, 하하. 저녁 먹기에는 좀 이른 오후 5시경, 수료 만찬을 베풀어주네요. 아주 잘 먹고, 5시 반에 집에 들어왔습니다.

어제 24일은 크리스마스이브이자 선친의 기일(음력 동짓달 28일), 너는 부자(rich) 마트에 가서 바나나, 귤, 사과, 배, 김, 황태포, 소주 1병을 사 왔습니다. 밤 11시경에 선친 학생님께 알현하려고요. 장을 봐 놓고 잠을 잤습니다. 그리고 10시에 일어났습니다. 잤더니 개운하네요. 햅쌀을 씻어 밥을 짓습니다. 그리고 물에 식초를 몇 방울 넣고 과일을 씻었습니다. 밥솥이 ‘칙칙푹푹’, 예전 증기기관차 소리를 내며 구수한 밥 냄새를 풍깁니다. 기차는 한자로 汽車인데요, 석탄을 연료로 물을 끓여, 증기를 발생시켜 그 증기의 힘으로 터빈을 돌리는 방식, 지금의 전기차와는 완전히 다른 시스템이죠. 하하. 지금은 기차 소리를 ‘칙칙푹푹’이라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기술 발전이 언어를 변화시키는 사례 같죠? 열차의 의성어는 지금 뭐라고 하는지? 그냥 ‘띠띠 빵빵’? 잘 맞지 않는 것 같죠? 이것도 국립국어원으로 미뤄야 할까요?

밤 11시 노트북에 “顯考學生府君 神位”를 띄웠습니다. 그리고 조촐하고 간략한 제사상을 차립니다. 과일과 밥을 놓고, 술을 따르고 절을 했습니다. 잠시 앉아 선친을 회상하여 아버지와 대화를 시도해봅니다. “아버지, 저와 제 아들들은 그래도 아버지의 후덕으로 건전한 생각을 지니고 살고 있습니다. 생전 아버지의 기도, 세계 평화를 위한 아버지의 염원을 기억하며 저희도 자유와 인권을 존중하는 세계 평화가 깃들기를 열심히 기도하겠습니다.” 더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가슴으로부터 눈물이 북받쳐 10분 정도 흐느꼈습니다. 제사상을 물리고, 밥과 김을 안주 삼아 아버지가 남기신 소주 3잔을 마셨습니다. 그러면서 너는 현생 학생 부군으로서 神이 될 때까지 너의 본분을 다하리라 다짐해 보았습니다. 학생이여, 힘을 기르소서! 2019.12.25.(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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