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와의 이별
드디어 내일 너의 백마를 떠나보냅니다. 너의 백마는 1999년 산으로 20년을 같이 지내며 너를 잘 도와주었습니다. 너도 그를 잘 보살폈지요. 그래서 엔진은 멀쩡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조향장치가 고장나서 이제는 수리하는 것 보다는 이별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너의 이에프 백마는 정말 고마운 친구였죠. 언제나 너의 조작에 순종했으니까요. 하하. 아마 너도 순종을 좋아하나 봅니다. 그러면 발전이 없는 법인데...
인류문명의 주류 소재는 총균쇠라는 말이 있습니다. 책 이름인데요. 너도 총은 살상무기라 싫어하지만 균과 쇠는 좋아하고 또 영향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균은 너의 몸에도 잔뜩 들어있는 건강의 심볼입니다. 특히 유산균, 하하. 너는 요쿠르트를 좋아하는데 그걸 노상 먹어서 그런지 대장 걱정은 없어 보입니다. 큰 공사를 해도 휴지도 비데도 별로 필요하지 않죠. 하하.
그럼 쇠는 뭘까요. 쇠는 너에겐 총보다 자동차입니다. 자동차는 많은 부분 쇠로 구성되어 있으니까요. 그래서 폐차장에서도 고철 값으로 35만원을 준다고 하더라고요. 네. 무료가 아니라서 참 다행이에요. 백마를 그냥 보낸다면 정말 서운할 뻔 했습니다. 그래도 너의 백마가 끝까지 봉사하고 간다니 참 기특합니다. 어디 그것 뿐이겠습니까? 자동차 보험료도 일할 계산하여 환불 받을 수 있다네요. 네, 참 합리적인 시스템입니다.
어제 일요일 서울 사는 아들 며느리 손자가 다녀 갔습니다. 대전서 아들 가족과 매형과 조카들을 만나 식사를 같이하며 화기애애한 한 때를 보냈습니다. 세 살베기 손주 도윤이가 붙임성이 있어 분위기를 잘 조절해주네요. 하하, 기특한 녀석, 비가 내리는데 아들이 엄마 성묘를 한다기에 너도 따라 나섰습니다. 성묘후 너는 아들 차에 햅쌀 두 포대를 실어 보냈습니다. 네, 이런게 인생인가봐요. 만나고 헤어지는 인생, 세상 모든 것은 다 만났다 헤어지고, 운 좋으면 또 만나고, 그러니 우리 인생이 행복하지 않을 수 없나 봅니다. 2019.12.2.(월).
12월 3일 아침 9시 폐차장 직원이 와서 백마를 견인해 갔습니다. 너는 손을 흔들며 백마의 재탄생을 마음으로 기원했습니다. 다시 강인한 백마가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