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
오늘 어떤 여고생의 통화에서 ‘꼰대’라는 말이 들려왔습니다. 버스 안이었어요. 그 여고생은 너의 뒷자리에 앉아서 친구와 전화를 하고 있었는데요, 너의 양 귀에 생생하게 들어온 그 소리, 체육 선생님 이야기인 것 같았습니다. 전화 상대방 친구가 체육 선생님에 관해 이야기를 꺼낸 모양인데, 그 학생의 말은 이러했어요.
“나 그 사람 싫어지고 있어, 꼰대 끼가 있는 것 같아. 유니폼이 더럽다고 유니폼은 너의 얼굴인데 얼굴이 더러우면 어떻게 하냐, 이렇게 말했거든.”
너는 그 학생의 말 한마디에 요즘 학생들이 보는 꼰대의 모습을 그려보았습니다. 또 선생님에 대한 학생들의 태도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옛날식으로 나무라면 꼰대가 된다는 것, 자기들끼리는 선생님을 그 사람이라고 한다는 것, 하하.
사실 학교 선생님들은 아직 보수적인 분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보수적인 분들은 반말을 잘합니다. 에둘러 표현하는 기법도 잘 활용할 줄 모릅니다. 직선적인 말투라고 할까요? 직선적인 말투는 듣는 이의 감정을 상하게 한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의 대화 습관은 대개 직선적인 것 같습니다.
라틴어 계통의 언어나 일본어에서는 에둘러 표현하는 습성이 있다고 합니다. 영어에서 Excuse me, would please 등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입에 배어 있고, 일본말에도 상대방을 존중하는 말투가 많은 것 같습니다. 또 토론 시 또는 토론 이후 상대의 평가에 대해서도 마치 선문답을 하듯 에둘러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말투는 습관적으로 직선적입니다.
“야, 너, 그러면 안 되는 거 알아 몰라, 엄마가 뭐라 그랬어. 왜 또 말 안 들어!” 운전 시 접촉사고라도 나면 “야이 ㅅㄲ야, 죽으려고 환장했냐?” 뭐 이런 식이니 말입니다.
예절은 말투에서 나오는 게 확실합니다. 어 다르고 아 다르다는 말처럼, 우리도 가정이나 학교, 직장 등에서 배려와 존중의 말투로 고쳐 나가면 좋겠습니다. 자녀에게나 어린 학생에게나, 대학생에게나 반말투 대신 배려와 이해, 존중의 언어를 구사하면 좋겠습니다. 말투로 인해 감정이 상해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없어진다면 그 책임은 선생님에게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말투와 행동은 비례한다고 보아도 좋을까요? 말투가 거칠면 행동도 거칠고, 말투가 착하면 행동도 착하다는 해묵은 ‘언어이론’을 되살려 봅니다. 너도 언제 어디서나 꼰대가 되지 않도록 밀투와 행동에 더 신경을 써야 하겠습니다. 네가 보기에 꼰대는 나이 기준이라기보다 말과 행동, 그리고 소통 기준인 것 같습니다. 2019.4.1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