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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일기주의자

일기주의자

 

너는 일기주의자다. 쓰는 글이 거의 다 일기이기 때문이다. 어제 21세 때 쓴 일기를 꺼내 몇 군데 읽어보며 혼자 웃었다. 그면서 어떻게 그 때 그런 생각을 했지, 하며 약간 감동도 했다. 197311일과 2일의 일기를 가감 없이 그대로 옮겨본다.

 

1973. 1. 1 , 1.2 , .

또 새해를 맞으니 자동적으로 1을 더하는 나이. 그 나이에 비례하여 좀 더 무게 있는 人品이 갖추어져야만 하겠다. 당황한다거나 안절부절 못하는 일은 이 해에는 치르고 싶지 않다. 하루하루 굳은 의지를 통하여 진리를 닦는 보람을 느끼며 살아가야겠다. 으로 만족하고 에서 희열을 느낄 줄 아는 건강한 人間으로 살아가야겠다.

오늘 밤에는 아버님 기제를 지냈다. 3때 돌아가신 아버님, 다시 한 번 그때를 회고하며 아버지를 추도했다. 6년이 흘러간 지금 그러나 인자하시던 아버님, 가난과 무식 속에서도 맑은 정신을 갖고 보람을 찾아 모든 고뇌를 겪으셨던 아버님이 눈앞에 선하다.

 

나는 검정고시를 위해서 공부를 하지 않겠다. 진정으로서의 내 知識人格을 위해서 공부하겠다. 인생의 가치는 시험으로 간단히 끝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과정을 강의서를 가지고 완전 독학으로 마스터할 계획이고 꾸준한 근로를 통하여 생계를 유지하며 그 속에서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다.

 

창원과 진우가 찾아왔다. 학교로, 그러나 그들은 따로따로 나를 찾아주었다. 창원은 경희대 3학년이고, 진우는 해병 소위에 임관되었다.

 

하하. 서툴지만 생의 방향을 잘 잡아보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45년 전의 일기와 지금의 일기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어쩐지 나이만 많이 들었을 뿐 너의 정신은 그때나 지금이나 대동소이한 것 같기도 하다. 다만 예전에는 나를 주어로 나를 만들어가기 위한 일기를 썼다면 지금은 너를 주어로 착한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가고자 하는 글을 쓴다고 하면 너무 과대평가하는 걸까? 하하. 금년도 12월 중순을 넘어섰다. 오늘 학교에서 강의 후 중간고사 범위를 가르쳐 주고 돌아와서 세월의 때를 덕지덕지 바르며 살아온 지난날을 예전 일기로 조금이나마 정화해본다. 하하. 2017.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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