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숲에서 노닐다
3호선 구파발역 2번출구 7211 번 버스 타고 진관사 삼천사 북한산 둘레길
수요 특권
오늘 수요일 하루 특권을 챙기기로 했다. 사실 특권은 어디에도 없다. 인간이 평등을 추구하는 한 그렇다. 그런데도 넌 오늘 특권을 챙기려 한다. 하하. 마치 특권이 행복인줄 아는 모양이지. 오늘 강의가 없으니, 무료로 듣는 강의는 하루 빼먹고 오늘은 특별한 자유를 누리려 한다. 그런데 이건 불평등을 야기하는 건 아니니 어떤 제도적 장치에도 얽매일 필요가 없다. 그러나 최선의 안전과 사회질서를 유지하며 오늘 하루 자유롭게 시공을 활보할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으니 여섯시 얼람이 노래했다. 밖을 내다보니 하늘에 구름이 가득하다. 비가 올 것 같다. 그런데 어제 복지관에서 줄 서서 점심을 기다리는 동안 너는 부자동네 부천 사는 친구에게 안부 문자를 보내보았다. 오래간만이라. 그랬더니 친구한테서 바로 전화가 왔다. 딸 아이 집 살림나는데 인테리어를 하느라 바빴었다고 한다. 누가 물어 봤나. 하하. 서로 안부를 묻다가 제안을 했다. 내일 시간 있으면 은평구 진관사에 같이 가겠느냐고. 그랬더니 1초의 망설임 없이 가겠다고 했다. 친구는 참 시테크를 잘 하네.
너는 이런 저런 사유로 혼자 다니기에 이골이 나 있는데, 이번엔 친구와 같이 가게 되었다. 그런데 날씨가 비가 올 것 같네. 에이 뭐 비 좀 오면 어때. 너는 서울대 마크가 찍힌 멋진 간이 우산을 챙겼다. 생전 안 입던 주황색 등산복을 입고, 튼튼한 운동화를 신고, 모자는 가방에 넣었다. 두유 2개, 물 1병, 준비물은 끝.
8시 20분에 집을 나섰다. 그 순간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부천을 출발한다는 것이다. 우산도 챙겼다고 보고했다. 하하. 너는 3호선 경찰병원 역에서 전철을 탔다. 출근시간이라 출발역(오금역) 다음 첫 번째 역임에도 불구하고 승객들이 만원이었다. 마침 실버석이 하나 비어있었다. 너는 그 녀석에 앉았다. 목적 역은 구파발역. 구파발이 있으면 신파발도 있을까? 하지만 그런 경제성 없는 의문은 곧바로 접고 너대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기관사의 거친 안내 목소리가 계속 역마다 들려왔다. “출입문 닫습니다. 출입문 닫습니다.” 저들은 새벽부터 얼마나 격무에 시달릴까. 그러니 저런 지치고 거친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다 착한 사람들일 거야. 향토작가였던 너의 누이는 예전에 어떤 작품에서 “악마의 목소리는 부드럽다.”고 쓰셨던데 그 말씀이 맞는다면 저 소리는 부드럽지 않으니 분명 악마의 목소리는 아닐 거야. 하하.
졸다가 또다시 기관사의 목소리에 잠이 깼다. 약수역이다. 열차 안에 빼곡히 서 있던 승객들이 많이 내렸다, 그래도 빈자리는 없다. 너의 옆자리에는 벌써 3명의 실버가 교체하여 앉았다. 한번은 남자 노인, 한번은 여자 노인, 그런데 그분들은 하나같이 앉자마자 계속 가방안의 소지품을 뒤적였다. 팔꿈치가 자주 너의 옆구리를 간지럽혔다. 너는 계속 몸을 움츠리며 간지럼을 피했다. 무얼 그렇게들 뒤적이며 찾는지 원. 노인네들이 정말 노인네들답군. 하하.
9시 30분 구파발역에 도착했다. 친구와는 10시 약속인데 30분 일찍 와버렸네. 언제나 미리 미리는 너의 습관이다. You are very unpunctual person. ha ha. 친구에게 전화를 해보았다. 안국역을 지나고 있다고 했다. 안전한 나라 안국, 천천히 오라고 입에 발린 인사를 하고 너는 너만의 여유를 즐겼다. 낯선 역 구내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관광안내 약도 등 사진을 찍었다. 300원짜리 커피를 한잔 뽑아 마시며 머리를 맑히고 있는데 어느새 친구가 개찰구로 나오다가 요금이 부족해 걸려버렸다. 하하. 친구는 잠시 카드를 충전기에 넣더니 충전이 되었는지 곧 개찰구로 나왔다. 친구는 오삼년 생이라 아직 실버자격증이 없다. 하하. 젊어서 좋겠다.
구파발역 2번 출구로 나와 미리 알아둔 7211번 초록버스를 탔다. 버스는 은평구 신도시 쾌적한 저층 아파트단지를 이리저리 지나갔다. 바 코트 쓰레기봉투를 수거용 기기에 찍고 버릴 수 있는 깔끔한 디자인의 쓰레기 흡입기들이 보였다. 거주자들이 쓰레기봉투 바코드를 저 기계에 찍고 쓰레기를 흡입기에 넣으면 쓰레기는 공기 압축식 이동 관로를 따라 처리장으로 자동 이동된다는 뉴스를 들은 적이 있는데 저게 그거였다. 하하. 쓰레기도 자동화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는가. 다 인간 중심적 사고방식으로 세상은 돌아가고 있다. 우리는 진관사, 삼천사, 하나고등학교 정류장에 내렸다. 전에는 없던 한옥마을이 보이는데 공사 중인 집도 더러 많았다. 네가 몇 년 전에 왔을 때는 없었던 장면이지. 사전 정보에 의하면 은평구에서 새롭게 한옥마을을 조성한다고 한다. 우리는 한옥마을을 지나, 태극기 비석을 지나 진관사 쪽으로 향했다. 그때 마침 중학교 동창이며 육군 중령출신 김 아무개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하하. 한번 놀러 온다더니 그 후로 전화 한번 없었는데, 하하. 다 바쁘겠거니 했다고 서로 안도의 말을 전하고 또 다음을 기약했다. 오늘 친구와의 관광에서 너는 삼천사를 먼저 가볼 생각이었지만 정류장에 이정표가 없어 먼저 가까운 진관사로 향하고 있다. 진관사 가는 길은 평지길이고 그리 멀지도 않아 곧 사찰에 도달했다. 전에 와 보았지만 친구는 처음이라는데 절도 이제 상당히 상업적으로 변했다는 느낌이 든다. 경내에 영가천도기도, 수능기도 등 현수막이 울긋불긋한데 여승의 독경소리가 다소 방정맞게 들려온다. 진관사는 비구니사찰이라 한다.
다시 삼천사로 가기 위해 내려오는데 삼천사행 이정표는 어디에도 없다. 마침 진관사로 올라오는 분이 있어 길을 물었다. 그랬더니 친절하게 지름길을 안내해 준다. “조금만 내려가서 우회전하고 또 좀 더 가다가 갈림길이 나오면 또 우회전 하라”고 했다. 그분과 헤어진 후 친구가 한마디 했다. “소방관이구먼.” 너는 미처 소방관인줄 몰랐는데 친구는 경찰 출신이라 보는 눈이 다른가 보다. 친구는 소방관은 친절하다고 한마디 했다. 과연 그런가보다. 그 분들이 하는 일은 화재진압만이 아니다. 모든 위험한 현장에는 그분들의 봉사와 희생이 있음을 우리는 안다. 봉사정신이 투철하지 않으면 소방관 직무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좀 내려가다가 우회전해서 한참 가니 좋은 숲이 나왔다. 우리는 벤치에 앉아 상쾌한 숲 공기를 마시며 잠시 삼림욕을 했다. 삼천사 가는 길가에는 보신탕, 백숙 등 식당 간판이 군데군데 무질서하게 붙어 있다. 친구가 저 음식점들 다 무허가라 했다. 저런 음식점들은 걸려도 벌금내고 또 장사를 한다고 했다. 벌금보다 수익이 많으므로 상습적으로 그리 한다는 것이었다. 저런 식당에는 들어가고 싶지 않다. 한 고비 넘으니 삼천사의 입구가 보였다. 입구 마당에는 무너진 축대공사 중이라 중장비가 움직이고 있다. 경내를 관람했다. 대웅전과 부속 건물들이 계곡과 바위 등 지형지물과 조화를 이루며 서 있다. 절에 가면 절을 해야 하는데 우리는 마음으로만 절했다. 12시가 좀 넘었다. 다시 하산. 친구가 먹을거리를 싸가지고 왔다며 어디 적당한 곳에 가서 먹자 했다. 그래 아까 지나온 그 숲으로 다시 와 개울가에 자리를 깔고 앉았다. 친구가 가져온 것은 막걸리 두병, 골뱅이무침, 새우깡, 기타 등등. 주거니 받거니 막걸리를 건아하게 마시고 옛날 친구들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다 너의 중학교 때 짝꿍 백 아무개가 생각나서 전화를 해보았다. 받지 않았다. 친구가 농장 일을 할 때는 전화를 받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 친구는 농업기술센터 공무원으로 평생 과학영농에 봉사했다. 말년에는 기사 딸린 소장까지 역임하고 지금은 논산에서 농장을 경영하고 있다. 대단한 친구지. 부럽기도 하고. 전화번호가 찍혀있을 테니 아마 2-3일후에는 틀림없이 전화가 올 것이다. 내려오는 길에 한옥마을 ‘셋이서 문학관’에 들렀다. 아까 전에는 문이 닫혀있어 들어가 보지 못했는데 이제는 문이 열려있었다. 얼굴에 술기운이 올라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는데 직원이 내다보고 들어오라 했다. ‘셋이서 문학관’의 셋은 천상병시인, 중광스님, 이외수, 그분들의 작품을 일부 전시해놓았다. 한옥 건물인데 2층까지 아담한 공간이다. 그런데 한 액자에 보니 세 명의 도적들이라고 적혀 있다. 하하. 이 분들 다 기인들이지. 문학하는 사람들, 예술가들은 기인이 많지. 하하, 불효는 할대로 해놓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등 좀 이율배반적인 사람들? 그래도 그 뒤늦게 반성하는 정신만은 알아주겠다. 하하. 다시 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고 오는데 친구가 저녁식사를 하고 가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네가 아는 종로 3가 곰탕집으로 가 이른 저녁을 먹고 인사동 거리를 걸었다. 그러면서 자네가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고서책방, 통문관에 가 보았다. 좁은 공간인데 고문서와 서적들이 천장까지 빼곡하다. 여주인이 책방을 지키고 있는데 고전을 읽지 않고 한문을 배우지 않는 현 세태를 비판하며 한숨을 짓는다. 그 한탄에 맞장구를 쳐주고는 아무것도 사지 않고 고서점을 나왔다. 예전에 듣기로 그 서점 창업자는 전의(全義) 이(李)가다. 너의 종씨지. 지금은 창업자의 손자가 물려받아 한다는데 그 분이 종(鍾)자 돌림이다. 너와 항렬이 같은 거지. 그런데 이런 고서점은 정보사회에는 점점 더 맥을 못 출 것 같아 걱정스럽네. 친구와는 종로 3가역에서 헤어졌다. 집에 와서 단잠을 한숨 자는데 친구로부터 카카오 문자가 왔다. 자기 폰으로 찍은 사진을 몽땅 보내 왔다. 그리고 어제 저녁 그 농장친구한테서 답장 전화가 왔다. 하하. 2017. 9. 30(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