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양보의 풍속도
우리가 청년시절이었던 예전(아마 1980년대)에는 어디서나 자리를 양보하는 미풍양속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무리 복잡한 차 안에서라도 연장자가 올라오면 조금이라도 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너나 할 것 없이 벌떡 일어나 기꺼이 자리를 양보해 주었다. 그러면 양보를 받는 어른들은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는 자리에 앉아 양보해준 젊은이의 가방을 들어주었다. 1980, 90년대의 미풍양속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자리양보 풍속도가 바뀌고 있다. 나는 오늘 서울대 규장각에서 매 학기 개설하는 규장각 금요시민강좌를 들기 위해 서울대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2호선 전철을 타고 서울대입구역에서 내려 서울대 가는 초록버스를 갈아탔다. 사실 나는 아직 젊은이들로부터 자리를 양보 받을 만한 실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전철이건 버스건 언제나 서서갈 준비가 되어 있다. 따라서 자리를 양보 받으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자리를 양보해주는 젊은이도 거의 없다. 좌석에 앉아 있는 분들은 누구나 눈을 지그시 감고, 아니면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오늘도 나는 2호선 전철을 타고 서서 갔다. 그리고 서울대입구역에서 내려 서울대 가는 초록버스를 탔는데 버스가 만원이라 또 서 있었다. 그런데 버스가 한정거장 쯤 이동할 무렵 서울대 학생으로 보이는 한 여학생이 나를 힐끔 보더니 아무 말 없이 일어나서 버스 저 앞쪽으로 피신하듯 가버렸다. 분명 나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 같긴 한데, 아무런 표현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자리를 비워두느니 그냥 앉기는 앉았다. 그러면서 양보해 준 그 여학생에 대하여 이런 생각을 했다. 그 학생이 고맙기는 한데, 기왕이면 어르신, 여기 앉으세요, 라고 한마디만 했더라면 서로 기분이 참 좋았을 걸 그랬다고.
예절은 표현이라고 하지 않던가? 서로 기분 좋게 한 마디만 건넨다면 양보하는 사람이나 양보 받는 사람이나 순간 기분이 좋고, 또 그 기분 좋은 여운이 남아 오늘 오후 내내 기분이 좋았을 텐데. 나는 오늘 그 여학생이 고맙긴 고마우면서도 한 2% 정도는 별로 고맙지 않은, 좀 불쾌한 감정을 느꼈다. 왜 나이 많은 사람이 돌아다녀요? 서울대는 뭐 하러 오시는 거죠? 뭐 이런 좀 거북한 뉘앙스 같은 거. 하하. 2016. 9. 9(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