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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음악/사진

돈황의 이모저모

돈황은 중국발음으로 둔황이라 한다. 돈황은 돈황석굴을 통해 세계에 널리 알려진 도시다. 제 17석굴에서 나온 5만여점의 책과 문서는 불교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를 제공했다. 돈황학이라는 학문 명칭까지 생겨날 정도다. 그러나 문서는 처음 발견자이자 관리인이었던 왕도사의 사리사욕으로 인해 독일, 프랑스, 일본 등지로 헐값에 팔려가고 이곳에서는 돈황문서를 별로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제17호 장경굴 앞에 관광객을 위한 전시관을 마련하고 장경동 발굴의 내력과 함께 원본 문서 몇 점만을 전시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석굴불교도서관'이라 할만한 이 장경동이 빈 껍질만 남아 있는 것을 보니 한사람의 문헌정보학자로서 말할 수 없는 허탈감이 들었다.  돈황석굴 내부의 모든 것은 사진을 촬영할 수 없었다. 무슨 '특굴'이라는 명칭을 붙여 특굴의 불상과 벽화를 보는 데는 추가적으로 비싼 관람료를 받고 있었다. 돈황석굴에 불심은 없어보였다. 중국정부는 석굴문화재를 이용해 관광사업만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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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황 시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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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서의 저녁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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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천안을 상징하는 공연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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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황의 야시장, 여기서 염소꼬치와 갈비 그리고 맥주를 각 일 병씩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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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황 석굴앞 주차장. 중국의 버스는 백미러가 게발처럼 앞으로 튀어나와 있다.나는 이를 '게발'버스라 이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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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산을 배경으로한 갈대숲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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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황석굴인 막고굴 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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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동을 발굴한 왕도사 공적탑. 그러나 안내원은 왕도사는 공적이 없다고 했다. 많은 귀중 문서를 외국에 팔아넘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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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황연구원 고객부 간판. '접대부'라는 표현이 특이하다.석굴 안내원들은 돈황연구소의 연구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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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불전. 이 안에 높이 35m의 대불이 모셔져 있다. 불자로서는 자연스레 합장하고 절하지 않을 수 없다. 이곳에 불심을 조금이라도 심고 싶은 심정이다. 초를 몇개 가지고 왔으나 공양할 분위기가 아니다. 마음 속으로만 대불전에 공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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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베이징올림픽 엠블렘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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