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옆에서
산악회에서 구례 매화밭에 간다기에, 아직 이른 봄인데 과연 매화꽃을 볼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관광버스를 탔습니다. 대전에서 남도 매화밭까지 3시간 정도 걸리네요. 날이 흐리더니 호남평야에 이르자 비가 내립니다. 미세먼지를 씻어내는 단비를 반기며 차에서 내리니 관광버스 수십 대가 주차장에 운집했네요. 너는 아침에 비옷을 챙기지 않아 비를 그냥 맞기로 했습니다. 대신 머리엔 망건 삼아 검은 비닐봉지를 써 보았습니다.
산길로 조금 올라가 봅니다. 온통 매화꽃 천지, 주로 흰색 꽃이지만 홍매화도 드물게 숨어 있습니다. 남도라 그런지 사이사이 동백꽃도 있고요. 너는 꽃들이 손짓하는 곳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꽃들의 백태를 스마트폰에 담았습니다. 비닐 망건에 물이 흘러 봉지를 벗고 대신 꽃무늬 목도리를 머리에 둘렀습니다. 하하. 그러니 매화꽃과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네요.
이곳은 매실 전문가 홍쌍리 여사가 있어 유명합니다. 매실, 저 꽃들이 열매 맺으면 매실(梅實), 매화나 매실이나 다 한자 말이기는 하지만 이름은 예쁩니다. 요즘 한글 단체에서는 우리말 이름짓기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참 좋은 운동이지만, 매화와 매실은 순우리말로 어떻게 지으면 좋을지, 한글을 사랑하는 너도 쉽게 떠오르지 않네요. 한글 단체에서는 사람 이름을 우리말로 짓자고 한답니다. 그렇다면 너의 이름은 무엇으로 지을까, 李鍾權 자두나무 쇠 북 힘? 하하. 이 숙제도 매우 어렵습니다.
비가 그치지 않아 행동반경을 넓히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좁은 땅에서 맴돌아도 꽃을 감상하기에는 충분합니다. 주변의 정자에서 산악회가 제공하는 점심을 먹고, 함께 한 한밭 사람들과 담소도 나누고, 천안 사람, 광주 사람들도 만나고, 파전에 벚굴까지 먹으니 호사한 기분입니다.
그런데 공원 옆에 색다른 차가 있어 물어보니 캠핑차라네요. 1톤 트럭 위에 각종 생활 장비를 설치했답니다. 참 좋네요. 저 차를 타고 돌아다니면 집 걱정, 숙박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하하. 한 대 마련하고 싶어집니다. 너는 저 컨테이너 차에 책을 싣고, 인터넷 컴퓨터를 장착하고 전국을 유람하며 이동도서관을 경영하고 싶어지네요. 아리스토텔레스의 소요학파처럼 이동하면서 즉석 독서프로그램을 진행해보고 싶습니다. 방과 후 학교 앞에서, 아니면 가는 곳 도시의 중앙공원에서 동서양 고전을 소개하고, 5분 연설도 참여시키고, 철학자들의 이름을 딴 피자도 만들어 팔고, 기타도 연주하고, 몸이 건강한 한 이런 독서문화 유람 사업은 가능할 것 같은데, 하하. 이제 나이가 많아 후학들에게 아이디어만 제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섬진강 변 흐드러진 매화꽃을 뒤로하고 우린 다시 한밭으로 돌아왔습니다. 올해도 한밭 농사 좀 잘 지어야죠. 너에겐 농업 전문가 친구가 한밭에 있어 먹거리 농사 걱정은 없습니다. 문제는 언제나 심전경작(心田耕作)이죠. 2019.3.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