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지 않는 꽃잎
꽃은 피고 지고, 세월은 가고. ♪. 슬프지만 엄연한 자연의 현실이다. 그러나 또 해마다 새 꽃이 피고 지니 장기적으로 보면 그리 슬퍼할 일은 아니다. 언제나 새 꽃이 다시 피어나니 그 덕에 역사는 흐르고 그 맛에 생명은 산다.
2016년 11월 4일 금요일 규장각에서 강의를 듣고 가을 캠퍼스를 좀 걸었다. 단풍도 감상하고 걷기 운동도 하고, 사실은 귀가용 초록 버스를 타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 가을 너에게 운동과 단풍은 부가적(extra) 수입이다. 그런데 화단에 수국처럼 탐스럽게 피어 있던 한 관목 꽃이 꽃 상을 유지한 채 그대로 말라 있었다. 어, 이상하다. 꽃잎은 떨어지는 법인데 그대로 박제가 되어버렸네. 이건 무슨 현상일까? 묵은 꽃이 떨어지지 않으면 다음 해 새 꽃이 어떻게 피어날까? 저 꽃나무는 자연의 순환법칙을 모르는 걸까? 아니면 해 논 작품이 아까워 더 오래 붙들고 있다가 겨울 지나고 떨구려는 걸까? 식물학자가 아닌 너는 그 원인을 규명할 수 없었다. 앞으로 구명(究明)할 대상. 그래서 스마트 폰에 메모를 하여 집으로 싸가지고 왔다.
너희 인간들도 수많은 꽃을 피우고 수많은 역사를 쓴다. 어떤 역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어떤 역사는 박제가 되어 남는다. 수십억 인구가 살다간 수많은 그 역사들, 정상의 역사, 비정상의 역사들, 그들도 일부는 계속 박제가되어너희들 곁에 문화재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그 박제 문화재 가운데 유일하게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있지. 그게 뭘까? 아, 책, 책, 책, 고전이라는 거야. 책은 생명을 말하고 있으니 생명이 있는 거지. 책은 정신을 담고 있으니 생명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거지. 그래서 계속 너희 생명을 확대재생산하여왔지. 이게 고전이라는 박제 문화재의 생명력인가 봐.
너희들은 역사 문화재를 통해 너희들이 오래 살았음을, 400만년이나 살아왔음을 안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도 가늠한다. 지지고 복고 싸우고 온갖 작태를 부리며 그렇게 비정상적으로 또는 정상적으로 살아 왔음을 안다. 그런데 지금 너희들은 문화재와 고전을 통하여 배운 바가 적어 그런지 또 세상을 이상하게 만들고 있다.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슬로건과는 반대로 정상의 비정상화를 실현하고 있으니, 쯧쯧.
너는 또 어쩌려고 출판사를 등록했다. 등록 번호 2016-000120, 출판사명은 문정인문학도서관. 책을 출산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특히 고전을 다시 현대 언어로 쉽게 풀어주는 책, 새로운 세대에게 고전의 식감을 일깨워 주는 책, 그래서 새 세대의 삶을 정상적으로 꽃 피게 할 수 있는 책, 그런 책을 낳고 싶다. 학교에서 본 그 박제된 꽃의 보존 정신을 살려 책을 통해 그 꽃에 정신을 불어 넣고 도도한 역사 속에서 그렇게 생명을 살고 싶다. 비정상의 정상화에 미력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 욕심일까? 2016. 11.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