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여행기 9 - 철문관과 버스팅호수
실크로드 여행기 9
철문관과 버스팅 호수
쿠얼러는 위굴말로 ‘전망’, ‘조망’이라는 뜻이라 한다. 구경거리가 많은 지역인가 보다. 아침 일찍 나서서 찾아간 곳은 철문관이다. 철문관은 실크로드의 한 관문이다. 이 관문을 통과하여 험준한 천산산맥의 좁을 길을 넘고 넘어 사람과 문물이 오갔다는 것이다. 문명의 교류는 그만큼 사람들의 고행을 필요로 했나보다. 죽을 각오가 없으면 지금도 이 길을 넘지 못한다.
철문관은 경치가 좋아서라기보다는 실크로드의 한 관문이라는 상징적 의미 때문에 관광지가 된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그리 빼어난 경치는 아니다. 한 입석(立石)에 쓰여 있는 ‘사주도(絲綢道)’라는 붉은 글씨, 실 사, 비단 주, 길 도. 비단길(silk road)임을 직접적으로 알려준다. 우리는 철문관을 통과하여 한 100여m 쯤 걸어가면서 봇짐을 지고 고행 길을 오가던 옛 상인들과 학승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좁은 길 위에 흙과 돌이 굴러 내릴 것 같은 가파른 절벽, 길 아래에 시냇물, 그리고 인근에는 수력발전소가 있다.
동서 문물의 교류, 어찌 보면 문명은 의식주에서부터 시작된 것 같다. 입을 것, 먹을 것, 거처할 것들을 보다 잘 마련하기 위해서 다른 지역과 소통하며 상승효과를 거두려 한 것이다. 사실 지금의 문명도 의식주 문명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현대인들은 의식주가 해결되어 어떤 정신적인 문화가치를 추구하며 사는 것 같지만, 그 저변은 다 의식주라는 생각이 들었다. 철학이 어떻고, 종교가 어떻다 해도 결국은 의식주의 평화가 기반이 되고 있는 것 아닌가? 종교인도 철학자도 먹어야 살고, 입어야 살고, 거처할 곳이 있어야 산다. 그런데 문명이 발달 할수록 그러한 의식주를 보다 합리적이고, 편리하고, 협력적으로 교류함으로써 인류의 평화를 유지, 발전시키는 것이 모든 학문과 종교의 목적이자 역할이 아닐까? 종교와 학문은 거창한 형이상학적 세계가 아니라 우리의 행복한 삶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무지의 소치’라는 비판을 받을까?
다음 둘러볼 곳은 버스팅호수라 한다. 사막에서의 호수, 기대가 크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역사유적지가 아닌 순수 관광코스여서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세계 최대의 담수호, 물이 다른 곳으로 흘러나가지 않는 호수라는 가이드의 설명이 믿어지지 않는다. 호수에 도착했다. 갈대숲이 무성하여 호수 전체가 보이지는 않았다. 조그만 쾌속 유람선을 타고 갈대 숲 사이로 신나게 물살을 가르며 달려 나가자 푸르고 드넓은 호수가 전개된다. 함께 탄 스님 한분이 일어서서 야! 하고 통쾌한 비명을 지른다. 아직 청춘스님인가 보다.
선착장인 모래사장에 내려 호반의 벤치에서 바닥이 훤히 보이는 맑은 물과 갈대 숲, 이어지는 푸른 하늘을 조망하며 휴식을 취했다. 하늘도 푸르고, 물도 푸른데, 갈대숲이 붓을 들어 녹색 직선을 그려 놓았다. 장관이다. 한 쪽에서는 민물고기를 구워서 팔고 있었다. 우리 같으면 회와 소주를 팔 것 같은데 회와 소주는 중국 어딜 가도 없는 것 같다. 그러니 장사가 안 될 수밖에. 이곳 상인들은 아직 한국 관광객을 파악하지 못했나 보다. 돌아오는 유람선도 빠르기는 전과 동. 평화롭게 떠다니며 고기를 잡던 오리들이 배를 피해 황급히 물속으로 고개를 처박는다. 유람선 운전기사는 오리고 뭐고 인정사정없이 달린다. 인간이 좀 온 생명을 사랑할 순 없을까? 오리에게 미안하다 못해 죄송함을 느꼈다. 헬로우 덕, 위 아 베리 베리 쏘리!
모래를 만지며 노는 중국 어린이와 맨발로 걸어보는 아기엄마. 어린이라도 중국말은 유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