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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역사/역사기행

실크로드 여행기 22 - 둔황의 불심과 장경동

실크로드 여행기 22 - 둔황의 불심과 장경동

2008년 7월 13일(일)

중국 공무원들의 출근시간에 맞추어 둔황석굴로 향했다. 둔황석굴은 통상 ‘막고굴’이라 부르고 있었다. 안내원은 ‘막고’라는 명칭은 이곳에 수도하던 고승의 별명이라고 했다. 그 스님의 수행이 매우 높아 莫高 스님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막고스님이  어떤 분이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하였다. 사실 막고굴은 우리 여행단이 방문을 예정한 최고 목표점이다. 그만큼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영국과 독일, 프랑스, 일본 등 각국의 역사학자들이 둔황 막고굴을 답사하고 연구함에 따라 이제는 ‘둔황학’이 성립되었다.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영국 학자들이 운영하는 ‘둔황프로젝트’가 있다. 둔황에 가지 않아도 둔황의 많은 부분을 자세히 알 수 있는 학술사이트다. 둔황에 가보았자 정보는 이 사이트보다 더 빈약할 수 있다. 다만 현지의 땅을 밟아본다는 의미가 좀 있을 뿐이다.

오전 9시경, 막고굴 앞에 도착했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유적지답게 입구에서부터 치장이 범상치 않다. 흙으로 쌓은 왕원록(장경동 문서를 발견한 인물)의 기념탑을 비롯하여 석굴 입구에 이르기까지 안내표지와 설명게시판, 그리고 전시관과 둔황연구원의 ‘접대부’ 사무실, 기념품 판매장, 정문격인 건축물 등이 여유롭게 띄엄띄엄 늘어서 있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사진을 매우 흔하게 볼 수 있는 막고굴의 중심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 사진 그대로였다. 따라서 별로 신기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차이라면 ‘사진과 실물의 차이’일 뿐이다. 그러나 석굴에 대한 나의 오해 하나가 풀렸다. 그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석굴이라 하면 고수동굴이나 성류굴 같이 천연동굴을 연상하게 되어 굴 입구에서부터 전등을 들고 몇 백 미터 안쪽으로 몸을 숙이고 기어 들어갔다 나오는 것인데, 이곳 석굴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막고굴의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 나의 연상은 저 주출입구를 통하여 캄캄한 굴속을 과연 몇 백 미터나 들어갈까 하고 의아해 했었는데, 실제로 와보니 그러한 오해가 풀리면서 다소 허탈감이 왔다. 모든 석굴이 깊지 않고, 한 개 한 개 굴이 다 얕아서 굴 밖에서 시야를 180도 넓혀 보면 마치 벌집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선행 여행자들은 어느 누구도 이러한 사실을 설명하지 않았으니 나 같은 촌놈은 오해하기 ‘딱’이었던 것이다.

카메라를 관리소에 맡기고 안내원의 감시 겸 안내를 받으며 석굴 입구에 들어섰다. 높이 35m 거대한 미륵불상이 인자한 모습으로 넌지시 우리를 굽어보고 있다. 나는 일행의 눈치를 볼 것도 없이 바로 두 손을 합장하고 예배를 했다. 다른 종교인들은 ‘우상숭배’라고 할지 모르나 나는 우상숭배건 뭐건 부처님의 인자하고 자비로운 모습을 뵈면 언제나 저절로 합장이 된다. 물론 물리적으로는 저 불상은 하나의 흙이나 돌에 불과하다. 그러나 물질은 정신을 담는 그릇일 수 있다. 우리 인간도 물질인데 다 정신을 담고 있지 않은가. 저렇게 웅장한 부처님의 상을 모셔놓은 것은 부처님의 정신을 생각하라는 뜻이다. 저 물질에 생명이 있건 없건, 정신이 있건 없건, 부처님의 상을 통해서 ‘너희들’의 정신을 부처님의 정신으로 합치시켜 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깨달아 중생을 팔정도의 바른 길로 인도하고, 세계평화를 달성하라는 웅대한 불교의 정신이 담겨 있는 것이다. 우상 운운하는 것은 한낱 소인배들의 ‘백치아다다’에 불과할 뿐이다.

여러 석굴을 둘러보았다. 학자들을 따라 한 굴, 한 굴, 굴마다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특징들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까지 석굴을 많이 보아 온 탓인지 내 눈에는 그 굴이 그 굴 같아서 굴 자체만으로는, 그리고 벽화 자체만으로는 별 흥미를 느낄 수 없었다. 불교미술이나 불교사에 문외한이라 그럴 것이다. 나의 관심은 벽화보다는 이곳에서 발견된 둔황문서에 관한 것이다. 이곳에 문서가 발견된 장경동(요즘 개그 잘하는 목사님 이름과 한글로는 똑 같다)이 있다는 정보를 알고 왔기에 장경동(藏經洞)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중국 돈황연구원 ‘접대부(接待部)’ 소속의 여성 안내원은 장경동에 가기전에 우리를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갔다. 장경동에 관한 별도의 전시관이었다. 그곳에는 장경동의 발굴 내력과 문서 유출 경위, 현재 문서의 소장 기관들이 소개되어 있었다. 안내원은 한국의 국립중앙도서관에도 일본인을 통해 흘러 들어간 둔황문서가 있다고 했다.(국내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음)  그러나 역시 ‘빨리빨리 주마간산’, 전시물들을 읽어볼 시간여유를 주지 않았다.

장경동이 우리에게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신라의 고승 혜초스님의 인도여행기 ‘왕오천축국전’이 여기서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프랑스 사람 펠리오가 왕원록도사에게 약간의 돈을 주고 가져간 둔황의 문서 속에 왕오천축국전이 포함되어 이 책은 현재 프랑스에 있다고 한다. 프랑스, 그들은 우리 문화재를 다량으로 가지고 있다.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을 비롯하여 병인양요 때 약탈해 간 강화의 외규장각문서들을 억류하고 있고, 둔황에 있던 혜초의 왕오천축국전까지 가져갔으니 그들은 마치 파리처럼 세계를 날아다니며 문화재들을 약탈 내지 수집해 간 것이다. 이래저래 파리가 밉다. 날아다니는 파리도 밉고 프랑스의 파리도 밉다. 파리채로 그냥 확!

바로 제17굴 장경동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장경동은 공허했다. 발견된 자료들이 다 흩어져버렸기에 역시 껍질만 남은 것이다. 허무한 감정으로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안내원은 왕원록도사는 장경동 문서를 발견했지만 문서를 보존하지 않고 외국으로 헐값에 넘겼기에 공적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내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았다. 문화재를 발견했으면 정부에 알려 잘 보존하면서 연구에 힘쓸 일이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팔아넘기다니 그는 도사가 아니라 무식한 졸부에 불과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다른 자료에 보니 왕도사는 장경동을 발견하고  당국에 보고하였으나 당시 중국정부에서는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기념탑이 있지만 아무도 경배하지 않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다른 굴들을 좀 더 보다가 점심을 해결하러 막고굴을 나왔다

식사 후에는 둔황박물관을 관람했다. 별로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죽간 몇 개가 눈에 들어와 촬영을 했다. 오후에는 다시 석굴로 들어가자는 최교수님의 제의가 일행을 압도했다. 원래는 ‘명사산’이라는 관광지를 갈 예정이었으나 기왕 이곳에 왔으니 놀러 가는 것보다는 둔황석굴을 좀 더 보고 가자는 학자다운 말씀이었다. 그래서 일부만 명사산으로 모래썰매를 타러가고 대다수는 다시 입장료를 또 내야하는 막고굴로 들어가기로 했다. 나는 처음에는 명사산으로 가서 관광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으나 장경동 전시관을 보고부터 마음이 바뀌었다. 뜨거운 모래사막에 가서 노느니 전시관을 한 번 더 보고 싶어졌다. 둔황문서의 실물은 별로 없지만 문서의 내력에 대한 것을 좀 천천히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최교수님의 뒤를 따라 막고굴로 갔다. 다른 학자들이 특굴 관람료를 내고 석굴 벽화를 보는 동안 나는 장경동 전시관에 들어가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하나 전시 설명을 읽어보며 눈도장을 찍었다. 사진촬영을 좀 허락하면 좋으련만 사진을 찍지 못해 매우 아쉽다. 노트에 적어가며 두 시간에 걸쳐 전시관을 한 바퀴 돌아 나왔다. 그래도 석굴 벽화를 감상하는 학자들이 나올 때 까지는 약 한 시간이 남았다. 나는 관리소로 나와 중국어로 된 막고굴에 관한 단행본을 샀다. 둔황연구원에서 나온 책이라 막고굴 하나하나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들이 빼곡히 인쇄되어 있다. 책값은 비쌌지만 중국어도 좀 익힐 겸 둔황도 좀 알 겸 좋은 자료라고 생각되었다. 또 기념품상점에 나가 다른 책을 샀다. 신강지역과 실크로드에 관한 책들이다. 주차장 앞 계단에 걸터앉아 이 책 저 책 책장을 넘기고 있는데 기다리던 일행이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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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원록도사의 기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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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고굴의 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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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서 다섯번째가 필자(첫번째는 자세히 보면 2명이나 막보면 1명으로 보여서 1명이라고 계산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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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황박물관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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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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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과 기념품상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