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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정보학교실/자료

오늘의 도서관 2018년 4월호

국립중앙도서관 월간지 <오늘의 도서관>에 원고를 보냈는데 편집팀에서 너의 원고를 재편성하여 2018년 4월호에 실었다. 파일은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에 탑재되어 있다. 

다음은 필자가 보낸 오리지널 원고이다.

 

역사에서 찾은 도서관의 가치와 사서직의 위상

도서관에 대한 우리사회의 일반적 인식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약탈해간 우리 외규장각 의궤가 2011년 아시아나 항공을 타고 우리 땅에 들어온 후 국립중앙박물관은 145년만의 귀환, 외규장각 의궤라는 기념 도록을 발간했다. 이 도록의 후미에는 규장각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논고 2편이 실려 있었다. 그 가운데 필자는 당시 국사편찬위원장께서 기고한 외규장각 의궤도서의 귀환을 반기며라는 논고에서 다음과 같은 문구를 읽으며 빨간 밑줄을 그어 놓았다.

“1991년 반환운동을 시작할 무렵만 해도 규장각, 외규장각을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고등학교 교과서에 규장각이 정조 때 왕실도서관이었다는 내용이 있었지만 이를 기억하는 사람은 소수였다. 규장각은 단순한 서책 보관 장소가 아니라 국정프로젝트 연구기관을 겸하였으니 도서관이란 소개도 잘못된 것이다.”

필자는 위의 내용 가운데서 규장각이 연구기관을 겸하였으니 도서관이란 소개도 잘못된 것이라는 그 원로 역사학자의 지적을 수긍하기 어려웠다. 우리나라 학자들은 대체로 도서관을 단순한 책의 보관 장소로만 인식하고 있다는 걸 분명하게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역사학자들이 세계 도서관의 역사와 그 문명사적 역할을 좀 더 자세히 연구해본다면 이러한 도서관에 대한 편협한 인식은 하지 않을 것이다. 또 일반인들도 도서관의 본질적 기능과 사회적 역할을 좀 살펴본다면 도서관을 단순히 책의 보존 장소나 학생들의 공부방으로만 인식하지는 않을 것이다.

 

도서관에도 철학과 원리가 있다는데...

도서관에도 철학이 있을까? 보통 사람들은 도서관에 철학이 있다고 하면 의아해 한다. 도서관에 무슨 철학이 있냐며 되묻기 십상이다. 그런데 문헌정보학을 공부하고 도서관의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도서관에도 철학이 있다는 걸 확실히 느낄 수 있다. 도서관의 철학은 존재론, 인식론과 같은 철학과에서 공부하는 그런 어려운 관념철학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도서관을 도서관답게 만들 것인가에 대하여 선각자들이 고민하고 경험해온 일종의 경험철학이라 할까, 아니면 도서관을 경영하면서 발견하고 축적한 경영의 지혜라 할까, 그런 실용적인 철학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사서들이 익히 알고 있는 인도의 도서관 선각자 랑가나단(S. R. Ranganathan)1931년에 저술한 The Five Laws of Library Science(도서관학 5법칙), 1995년 미국의 문헌정보학자 크로포드(Walter Crawford)와 고먼(Michael Gorman)Future libraries; dream, madness and reality(미래의 도서관; 꿈인가, 광기인가, 현실인가)라는 저서에서 정리한 도서관학의 새로운 5법칙과 같은 것이다.

필자는 대학원 시절 도서관사 수업에서 교수님이 수업교재로 채택한 원서 A history of the principles of Librarianship(사서직의 역사 원리)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영국의 대학도서관 사서 톰슨(James Thompson)1977년에 저술한 이 책은 서양도서관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검토하면서 그 속에서 도서관 및 사서직의 원리 17가지를 도출해내고 있다. 이 책에 반해버린 필자는 그 후 이 도서관의 역사원리 17가지를 요약 번역하여 국회도서관보(20043월호)에 기고한 바 있다.

 

역사에서 찾은 도서관의 철학과 사서직의 원리

제임스 톰슨의 도서관과 사서직의 역사원리를 여기서 자세히 다루는 것은 지면관계상 불가능하고 또 이미 다른 간행물에 소개되어 있어 인터넷에서도 검색 가능하므로 본고에서는 그 줄기만을 간략하게 살펴보고 우리 사서들이 가져야 할 도서관에 대한 역사 철학적 가치인식, 그리고 사서직의 위상문제를 아울러 점검해볼까 한다.

도서관은 사회가 창조한다. 세계 최초의 아슈르바니팔 도서관이나 헬레니즘 문화의 산실 알렉산드리아도서관은 각기 그 당시의 사회적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도서관은 사회가 보존한다. 역사적으로 책과 도서관에 해를 끼치는 것은 외부적 재난이나 전쟁 등 사회적 요인이었다.

도서관은 지식의 보존과 전파를 위한 것이다. 도서관은 지식을 수집, 보존하면서 이를 전파하는데 목적을 두었다. 만일 도서관이 단지 보존창고로서만 여겨졌다면 도서관은 사회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도서관은 권력의 중심에 있다. 17세기에 프랑시스 베이컨은 지식은 힘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도서관은 지식을 소장하고 있으므로 당연히 힘의 센터가 된다. 또 도서관은 고대에는 왕궁이나 사원 내에 있었고, 민주주의 시대에는 의회 및 시민의 중심에 있다.

도서관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 도서관은 고대에도 대중에게 개방하였다. 예를 들면 아테네의 폭군인 페이시스트라투스도 그의 장서를 공중에 개방하였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사서 제노도투스는 도서관을 공중이 자유롭게 접근하여 이용할 수 있도록 최대의 노력을 기울였다.

도서관은 반드시 성장한다. 중세 수도원에 도서관이 설립될 때에는 불과 수 백 권의 장서를 한 두 개의 책상자속에 넣어 수도원의 한 모퉁이에 보관 하였지만 그래도 도서관은 성장하였다. 특히 인쇄시대에 접어들면서 책이 대량 생산되어 도서관은 단순히 성장하는 정도를 넘어서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였다.

국립도서관은 모든 국가적 문헌과 다른 나라의 대표적 문헌을 소장해야한다. 고대 아슈르바니팔 도서관은 당시의 국내외 모든 문헌을 수집하고자 했다. 또 알렉산드리아도서관은 헬레니즘 문헌을 완벽하게 구비하는데 목적을 두었고, 고대 이집트, 페르시아, 라틴의 문헌 등 다른 나라들의 대표적인 문헌들도 수집하였다.

모든 책은 이용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어떤 책임 있는 사서나 학자라도 과거 3000년 동안 일어났던 수많은 재난으로 인해 손실되지 않고 남아있는 단 한권의 책이라도 대단히 소중한 것으로 여긴다. 또 에드워드 에드워즈(Edward Edwards)는 국가도서관의 기능에 대하여 국가도서관은 백과사전적인 장서소장처가 되어야 하며 기념비적인 문헌 뿐 아니라 하찮은 자료도 구비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누군가는 언젠가는 이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서는 교육을 받은 자라야 한다. 고대 이집트의 사서들은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고,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의 사서들도 마찬가지였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최초의 사서인 데모트리우스는 철학자로서 아테네 최고의 교양을 갖춘 문인이었다. 그 후 그를 계승한 수많은 사서들도 모두 유명한 학자들이었다.

서서는 교육자이다. 17세기에 죤 듀리는 도서관직을 안이한 생계의 수단으로 여기는 사서들을 경멸하였다. 그리고 그는 도서관 관리자가 자기 업무의 본질을 이해한다면 공공에 유익하도록 역할을 수행하면서 세계적, 보편적 학문의 진보를 위한 교육자의 역할을 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서의 역할은 정치적 사회적 시스템 속에 통합되어야만 그 중요성을 발휘한다. 고대 이집트의 사서들은 높은 정치적 지위에 있었고,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사원도서관의 사서들은 높은 성직자였고, 궁중도서관의 사서는 고위 공무원이었다. 사서의 역할은 그 사회의 정치적 사회적 시스템 속으로 충분히 통합되어야 한다. 사서들은 결코 내부지향적이어서는 안 된다. 19세기에 에드워드 에드워즈는 공공개혁과 정치적 로비를 통해서 영국 전역에 무료도서관 사상을 이끌어 냈다. 그의 첫 성과는 1850년 공공도서관법을 통과시킨 것이다.

사서는 훈련과 실습을 받아야 한다. 사서는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현장에서 끊임없는 훈련과 실습으로 도서관 업무에 숙련하여야 한다.

도서관장서의 확충은 사서의 의무이다. 아슈르바니팔은 도서관 장서의 확충은 사서의 의무라는 원칙을 세우고 전국 각처 및 외국에 특사를 보내 모든 종류, 모든 주제의 기록물을 수집하도록 하여 니네베도서관에 30,000장의 점토판 장서를 축적하였다. 알렉산드리아도서관의 최초의 사서인 데모트리오스는 가능한 한 전 세계의 모든 책을 수집하고자 하였으며, 그가 듣거나 보았던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모든 자료들을 구입하고자 하였다.

도서관은 어떤 질서체계에 따라 자료를 정리하고 그 내용에 대한 목록을 제공하여야 한다.

도서관은 지식의 저장고이므로 주제에 따라 정리하여야 한다.

도서관에서의 주제별 그룹화는 실제적인 이용편의를 고려해야 한다. 이는 기계적인 분류보다는 이용자의 편의를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도서관은 주제별 목록을 갖추어야 한다. 이 원리는 도서관이 주제별로 정리된 지식의 저장고라는 사실과 관련된다.

이렇게 각 원리에 순서가 매겨져 있지만 이 번호가 곧 논리적인 순서는 아니다. 따라서 이 17가지 원리들을 1. 도서관 설립과 보존의 사회성, 2. 사서의 장서수집 및 확충의무, 3. 지식의 보존, 이용, 전파, 4. 장서관리의 합리성, 5. 사서의 교육훈련과 전문성 등 5가지로 나누어 그룹화 하면 다음과 같다.

1. 도서관 설립과 보존의 사회성

도서관은 사회가 창조한다. 도서관은 사회가 보존한다. 도서관은 권력의 중심에 있다.

2. 도서관과 사서의 장서수집 및 확충 의무

도서관은 반드시 성장한다. 국립도서관은 모든 국가적 문헌과 외국의 대표적 문헌을 소장해야 한다. 도서관장서 확충은 사서의 의무이다.

3.지식의 보존, 이용 및 전파

도서관은 지식의 보존과 전파를 위한 것이다. 도서관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랑가나단의 제2법칙과 비슷함). 모든 책은 이용하기 위한 것이다(랑가나단의 제1법칙과 비슷함)

4. 장서관리기술의 적절성

도서관은 어떤 질서체계에 따라 자료를 정리하고 그 내용에 대한 목록을 제공하여야 한다. 도서관은 지식의 저장고이므로 주제에 따라 정리하여야 한다. 도서관에서의 주제별 그룹화는 실제적인 이용편의를 고려해야 한다. 도서관은 주제별 목록을 갖추어야 한다.

5. 사서의 교육과 전문성

사서는 교육을 받은 자라야 한다. 사서는 교육자이다. 사서의 역할은 정치적 사회적 시스템 속에 통합되어야만 그 중요성을 발휘한다. 사서는 (지속적으로) 훈련과 실습을 받아야 한다.

이상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도서관은 지식정보의 수집, 보존, 전파를 담당하는 교육 및 연구기관이라는 것, 이를 위해 장서를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수집하고 정리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사서들은 교육을 받은 전문가로서 도서관에서 교육과 연구를 실행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곧 도서관의 본질적 목적이며 사서의 역사적 의무와 책임 그리고 역할이라 할 수 있다.

정보사회 도서관의 본질적 가치와 사서직의 위상

정보기술의 발전으로 사회는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도서관도 이러한 변화에 대처해왔으며 앞으로도 더욱 선제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도서관이 정보를 수집, 정리, 보존, 분석, 연구, 교육에 제공하여 학술문화와 문명발전에 산파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도서관의 고유한 가치는 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오늘의 도서관 경영자들은 도서관 선각자들이 역사적으로 수립해 온 도서관의 역사철학적 가치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도록 활력경영(vitality management)을 해야 하겠다.

또한 사서들은 3천년 도서관의 역사에서 정립된 사서직의 교육경영자적 역할을 깊이 인식하고 스스로 사서직의 위상을 제고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 사서직에 대한 우리사회의 왜곡된 인식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사서들의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사서에 입문할 때 흔히 사서 고생하러 왔느냐는 아재개그를 듣는다. 그런데 정말 사서 고생할 각오가 되어있어야만 사서직의 역할을 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서는 한직(閒職)으로 조용한 곳에서 감독자의 터치를 덜 받는 그런 편안한 직업이라고 인식해서는 사서직의 역할과 위상을 제고할 수 없을 것이다. “사서의 역할은 정치적 사회적 시스템 속에 통합되어야만 그 중요성을 발휘한다. 사서는 내부지향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아로새겨 사회 속에 적극 융합하여 사회와 원활하게 소통함으로써 도서관과 사서직의 위상을 제고할 수 있는 길을 다함께 모색해야 하겠다.

 

참고문헌

1. 랑가나단(S. R. Ranganathan) , 최석두 역. 도서관학 5법칙. 한국도서관협 회. 2005

2. 톰슨(James Thompson). A history of the principles of Librarianship.

LONDON; CLIVE BINGLEY. 1977

3. 이종권. 도서관 경영의 법칙. 글앤북. 2017. 4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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